방주의 창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구하소서

이주연
입력일 2025-04-29 11:18:25 수정일 2025-04-29 11:18:25 발행일 2025-05-04 제 344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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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우리 모두에게 당신을 알렸던 그때로부터 한 해 한 해를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오셨던 교종께서 하느님 집으로 돌아가셨다. 많은 이에게 참된 제자 됨의 삶을 보여주셨던, 그렇기에 참으로 고단하고 힘들었을 12년이었다. 참 많이도 닮았다. 3년 공생활을 하신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과 만난 사람들은, 12년 종들의 종으로 살아오신 교종의 그것과 참으로 많이 닮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고 자신도 포기했던 병자들, 세상의 탐욕과 권력에 지배당해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던 이른바 마귀 들린 사람들,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이방인들, 집도 일자리도 빼앗겨 갈 곳 없는 버림받은 사람들, 더럽고 천하다고 홀대받는 사람들….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빼앗긴 사람들, 그래서 더 많이 돌보아주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내민 예수님의 손은 다시금 그들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기에 충분한 지지이며 연대였다.

작은 쪽배에 몸을 맡겨 지중해 바다를 건넌 사람들, 견뎌내지 못해 끝내 숨져간 동료와 자식들을 채 묻지도 못하고 앞길이 막막했던 이들을 즉위하자마자 찾아간 교종이었다. ‘이기는 편이 내 편’이라며 힘의 논리로 일관하는 강대국들의 얍삽한 처신에, ‘사람의 생명과 피조물의 안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앞세웠던 수많은 메시지였다.

그렇게 프란치스코 교종은 어떤 이들에게는 밉상이었다. ‘거리에서 노숙자가 죽어가는 것을 외면하는 언론이 주가의 변동에는 그처럼 예민한 뉴스로 다룬다’는 일침에, 배제하는 사회에 대한 비난에,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씀에, ‘가난한 나라에 대한 책임이 그들을 침탈했던 강대국에 있다’는 선언에 얼마나 많은 정치인과 경제인이 흠칫했는지 모른다. ‘교회는 야전병원이 되어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말씀에, ‘당신이 앉아 있는 교종의 자리부터 시작하여 교회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고언에,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지 말고, 그들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에 또 얼마나 많은 종교인이 곤혹스러웠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편을 가르는 와중에, ‘고통받는 이들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엄중한 가르침은 길 위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이에게 이정표였다. 그러니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는 밉상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 등 당대의 지배층에 밉상이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밉상스러웠던 그 말과 행위가, 어떤 이들 특히 삶의 나날이 고통으로 이어진 이들에게는 젖과 같은 고소함이요, 꿀과 같은 달콤함이었다. 그로써 고통스러운 하루를 견딜 수 있었고, 그 위로로 꺾인 무릎을 펼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순례자들에게는 내비게이션이었고, 젊은이들에게는 빼앗겼던 희망이었으며, 이주민들에게는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신 분께 ‘시대의 성인’, ‘가난한 이의 성자’ 등 수많은 찬양과 숭배에 가까운 서술이 부여된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 이분을 크게 현양하고 영웅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저 옆집에 사는 맘 좋은 아저씨로 남기고 싶다. 우리와는 다른 부류의 존재라고 여기며 격벽을 세울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가 그와 같이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로 삼을 것 같아서 오히려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두 가지 말씀,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구하소서”와 “옆집의 성인이 되어주십시오”를 기억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제 각 세대의 언어로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께 인사드리고 싶다.

안녕, 호르헤 할아버지! 평안하세요, 프란치스코 아저씨! 잘 가시게! 곧 봄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우리 모두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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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제6 도봉-강북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