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週間世界(주간세계)] 브라질 移民事情(이민사정)을 듣고

입력일 2022-03-28 15:24:03 수정일 2022-03-28 15:24:28 발행일 1963-03-10 제 366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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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가톨릭 移民協議
打開할 길은 없는가?
政策貧困에 起因
機關 設置를 提議한다

브라질 이민(移民)들의 현지보도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비록 이번 「케이스」가 정부의 주선으로 된 것이 아니고 사인(私人)간의 계약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이민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거기 만일 잘못이 발생할 때 단지 책임의 소재(所在)부터 들고나선다는 것은 지극히 옹졸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실정을 들어보면

▲김모씨와(그는 현지에 근 45년간 거주한 사람이다) 계약 당시에는 그가 농가 건축 및 토지 구분 등을 완료하고 곧 정착시키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준비는 고사하고 그곳(미라까뚜) 통지가 과연 김씨의 것이냐는 것조차 분명치 않고

▲브라질 연방정부 이식민국장(移殖民局長)이 김씨를 불러 토지 소유 대장과 이주허가서를 내도록 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김씨의 변명은 그간 우기(雨期)였고 송금이 늦었다고 하고 있으나 한편 전기 이민당국은 김씨에게 돈을 주지 말 것을 당부하고 최악의 경우 다른 토지를 물색해준다고 다짐하고 있다.

▲2월17일 상오 김씨를 앞세우고 현지를 답사하려 현장에 갔으나 경사가 심한 산등성으로 기계를 사용하기도 어렵고 겨우 「바나나」밖엔 심을 수 없는 곳이었다.

대개 짐작이 가는 것은 애당초 그 계약이 얼마나 허술했던가 하는 것이다. 적어도 계약이민이라면 계약 당사자간의 최선의 권리 의무가 표시되고 또 자세하고 면밀한 편리(써비스) 제공 등이 친절히 명시되었어야 했다. 물건을 하나 붙이는데도 바다를 건널 때엔 계약사항 및 보험(保險)에 관한 상세한 조건을 다는 법이다.

최근 브라질에서 30년간 일본인들을 위해 의료(醫療)에 종사하고 잠시 모국을 방문한 호소에씨 부부(가톨릭신자)에게 일본 정부는 훈3 등을 수여하고 일본 가톨릭이주협의회(移住協議會)는 전국순회강연을 의뢰했다고 한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가톨릭 이주협회의 호의로 전국순회 강연을 돌면서 각지의 이민열이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위해서 보다 아래서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30년가 브라질 생활에 젖은 본인은 혹 이민에 대한 고루한 생각을 씻지 못하고 있지나 않는가 염려했었다. 우리는 이 좁은 섬나라에서만 살 수 있다는 소민족적 생각을 떨어버리고 장래성 있는 고장을 향해서 해외로 발전해 가야만 한다. 1960년의 예를 들더라도 이태리인은 10만명 영국으로부터는 33만명이 브라질로 이주해온데 비겨 일본은 7천명에 불과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8천만의 인구가 자국을 버리고 신천지를 찾아왔다. 지금 세계연방(世界聯邦)을 부르짖고 있는 때에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참으로 이민을 절실히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한다면 먼 장래를 목표로 분발해서 구라파인에 지지 않는 이민을 서둘러야 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사는 곳에 가면 신(神)이 없는 것 같아 섭섭하다고 한다. 일본인은 자연법(自然法)에 순종하는 정신이 없다. 대전 중 「나치스」는 대량학살을 했지만 오늘 일본인들은 낙태라는 수단으로 60만이 넘는 직접살인(殺人)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神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브라질의 이태리인 폴튜갈인들은 참으로 명랑하고 건실하며 또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가고 있다.…』

호소에씨의 말(일본 가톨릭신문 3월3일부 참조)에서 그곳 사정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의 애국적 정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브라질은 일본 이민이 가장 성공한 곳이다. 그러나 그의 설명대로 구라파인들은 연간 3,40만씩 들어오고 있는데 일본인은 불과 7천명이라면 그 장래는 뻔한 것이다. 우리는 고작 17가구가 그것도 해방 후 최초의 이민이라고 한 것이 모든 것이 원할이 되지 않아, 17가구 중 6가구는 연고자를 찾아가도록 해결을 보았고 나머지 11가구의 생활형편은 3천 「달라」 이상이 2가구, 1천 「달라」에서 2천 「달라」 사이가 3가구 뿐, 나머지는 7백 「달라」 3백 「달라」, 1백 「달라」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남에 지지 않을 만큼 많은 대학이 있으나, 이 이민문제를 「테마」로 연구 주간을 했단 말을 듣지 못했다. 이런데서 큰 결함을 발견할 수 있는 줄 안다. 이민 사업의 실행방도를 수립할 수는 없어도 순수한 연구의 영역에서라도 활발히 그 필요성을 밝혀갈만한 일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인구부분을 중요하게 다루고 그 방도로 산아제한의 실행과 거기 거액의 예산을 염출하기는 했으나 그 직접 해결책이 될 이민에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이러한 이민에 대한 무관심이 장래를 투시하는 정책의 빈곤(貧困) 및 외교적 역량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음을 곧 지적할 수 있으리라. 이를 좀 더 근본적인 데서 본다면 우리의 실정이 중점적인 정책의 실행에도 벅찬데다가 그같은 부족을 보충할만한 조성단체(助成團體)의 육성을 등한히 한 탓이 많은 것이다. 실력 있는 민간단체가 자주(自主)적인 활동을 해가도록 정부는 모든 편의와 후원을 보태여 줌으로 정부 활동을 조성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이번 이민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더라도 현지와 직통할 수 있는, 가령 일본에서의 가톨릭 이주협의회 같은 단체가 있었더면 모든 부족을 사전에 보충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무작정한 선전이나 높은 이론보다, 착실한 실천기관이 요청된다.

그런 실력 있는 기관을 통해서 힘있는 전교활동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도 교회는 사회사정의 변모를 주의깊게 측정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