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모승천 축시] 어머니, 우리가 당신을 부르면 /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입력일 2019-11-06 11:34:29 수정일 2019-11-06 11:34:29 발행일 1987-08-16 제 1568호 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어머니,

우리가 당신을 부르면

땅 위에서도 천상의 종소리를 듣습니다.

무섭게 폭우를 쏟아붓던 하늘에

기적처럼 태양이 떠오르면

근심과 우울로 습기찼던

우리 마음의 방에도 빛이 스며듭니다.

물난리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이들과

집과 가족을 잃어버린 이웃의 아픔을

어떻게 나누어야 좋을지 모르는

우리의 무력함에 눈물 흘릴 때

어느새 곁에와서 함께 우신 어머니

슬픔이 깊어지면 말은 숨어버리고

눈물만이 절절한 기도인 것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당신께 배웠습니다.

오늘은 우리 겨레의 해방절이며

하늘에 올림받으신 당신의 축일

목숨 바쳐 나라를 사랑한 이들의

피와 눈물로 새로이 탄생한 자유를

소중한 선물로 받아안고

우리가 태어난 산과 강과 들에

엎드려 입맞춥니다.

103위 순교성인들과 수많은 無名의 순교자들이

피흘려 신앙을 증거한

이 축복받은 생명의 땅에서

세례의 흰 옷 입은 우리네 가슴마다

승리의 기(旗)를 달고 만세를 부릅니다.

어서 오십시오, 어머니.

고통과 인내와 기다림의 江이었던

당신의 한 생애처럼

굽이치는 시련의 물살을 딛고 일어선

우리 역사의 한가운데로 오시어

늘 함께 계셔 주십시오

영원을 향해 흘러가는

우리네 삶의 바다 가운데

희망으로 우뚝 솟은 푸른섬이 되십시오.

당신이 지금껏 그리하신 것처럼

우리 가정과 교회, 나라와 세계를

크신 사랑으로 보호해 주시고

아물지 않는 모든 상처를

어머니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십시오

우리에게 예수를 낳아주시고

끝내는 우리를 그분께 데려가실

믿음과 겸손과 구원의 어머니

하나뿐인 태양이 만인의 가슴에

은총의 빛을 뿜어내는

8월의 하늘을 보며

우리는 하나뿐인 당신의 아들 예수를

우리의 태양으로 받아안고

뜨거운 사랑을 고백합니다

장마철의 곰팡이처럼

여기저기 얼룩져있는 우리의 죄를

깨끗이 속죄하여 닦아낼 틈도없이

늘 필요한 기도부터 드리는

자녀들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 우리가 당신을 부르면

멀리있던 하늘이 더 가까이 옵니다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 모두의 염원처럼

하얀 구름떼들이 떠다니는 하늘 위로

당신을 기리며 승천하는 기도의 합창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여, 찬미 받으소서」

「평화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이해인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