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집트. 이집트는 구약의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출애굽의 현장이기도 하다. 성서에 나타난 성지, 아니 구세사의 현장을 여는 순례의 관문은 이집트에서부터 열기로 했다.
새벽 6시 카이로공항은 여전히 낡고 협소했다. 짙푸른 하늘과 청정한 공기를 빼놓고는 공항과 그 주변을 연결하는 도시들은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속에 가라앉고 있는 듯 했다. 현금소지에 대한 까다로운 심문 절차로 약간 지체한 이외에 이집트입국은 생각보다 수월한 편이었다.
새까만 머리칼에 역시 새까만 눈동자, 서구적인 냄새와 동양적인 색갈이 적당히 뒤섞인 이들의 얼굴은 낙천적인 그들의 기질과 함께 동양의 순례자들을 웃음으로 반기는 듯했다.
가난의 흔적이 곳곳에 진득하게 배여 있는 환경과는 무관하게 그들은 눈만 마주쳐도 활짝 웃는 모습으로 순례자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었다. 아프리카대륙 북쪽에 위치한 고대문명의 발상 지중의 하나지만 오늘의 이집트는 분명 그 옛날의 영광을 그대로 이어 가고 있는 이집트는 아니었다. 1백만 1천 4백 49km, 국토는 우리나라의 5배에 가까운 크기지만 95%가 불모의 땅, 끝없이 펼쳐진 사막 속에서 나일강 유역에 산재한 오아시스 지역만이 유일한 이집트의 젖줄이었다.
4천만명의 인구가운데 75%가 문맹. 뿐만 아니라 국민소득 1천불을 밑도는 경제적인 요인 속에서 이집트의 과거의 영화, 그 번영의 뿌리를 찾기는 참으로 황당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 여장을 푼 일행과 함께 첫발을 디딘 곳이 올드카이로(舊 카이로). 구 카이로에는 아기예수와 성모마리아, 그리고 요셉 성인 등 성가정일가가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 와서 잠시 머물렀다는 장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파라오의 딸이 강에서 모세를 건져냈다고 전해지는 갈대숲자리 바로 옆에 고대 건축양식의 소박한 교회 하나가 서있는데 그곳이 바로 아기예수 피난기념 성당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성 마리아 꼽트정교회가 관리하고 있는 이 성당은 마침 정교회 이사가 진행 중이어서 우리 일행은 외부에서 현지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에 의하면 이집트에는 성가정일가가 피난 와서 머물렀다는 장소가 10여군데가 있다는 것. 이곳 역시 추정되는 10여개 장소 중 하나일 뿐 확실한 장소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의 방문은 약간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이집트순례와 취재의 보다 근본적인 목적이 출애굽의 현장 그 역사적인 사건의발자취를 더듬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위한삼아 시나이반도로 향했다. 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 붙여 살던 곳(창12장10절)이자 패전한 이스라엘의 피난처(예레42장)였던 이집트는 사실 구세사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 장소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모세를 축으로 출애굽이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이집트에서의 순례는 이제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나 이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라』(출 3장8절~10절).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출해 내고자 계획한 야훼 하느님은 그 사명을 모세라는 인물을 통해 맡기시면서 출애굽의 사건은 펼쳐진다.
불림을 통해 사명을 부여받은 모세가(출3장1절~22절)파라오와 대결 등 우여곡절 끝에 탈출을 시도한 그 길은 시나이 사막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야훼 하느님은 당신 백성의 탈출을 위해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출 7장14절~10장21절).
▲나일강물의 변화 ▲개구리 떼 습격▲모기떼 습격▲파리 떼ㆍ등에 떼 등장▲가축의 몰사 ▲종기▲우박▲메뚜기 떼의 습격▲어두움 ▲맏배의 죽음…재앙의 절정인 맏배의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파라오는 굴복하고 만다. 맏배들의 죽음으로 온 이집트가 통곡소리로 진동할 때 파라오는 당장 그날 밤 안으로 이집트를 떠나라고 애원하고 비로소 야훼의 계획은 실천에 옮겨지게 된다.
드디어 출발. 새벽공기를 가르며 순례자들은 버스라는 문명의 이기 속에 앉아 시나이반도를 향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탈출에 합세했다. 출애굽의 여정은 아직 여러 가지 설(說)과 정확한 지리적 위치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 시나이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형식으로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