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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백과] 77. 정신건강 -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

박정수 ·동화신경정신과 의원
입력일 2019-07-22 17:36:57 수정일 2019-07-22 17:36:57 발행일 1990-11-04 제 1728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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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긴장이 주요원인
「자야한다」는 생각 버려야
일생의 약 3분의 1을 잠으로 낭비(?) 한다고 생각해보면 잠자는 시간은 아깝기 짝이 없다. 될 수있는대로 잠을 많이 자지 않는 것이 사실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가 자야한다는 수면의 필요성에 적지 않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의 잠은 꼭 이러이러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실 과학적으로 보면 그 같은 고집은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면의 필요성이 그 길이만 하더라도 어린이의 8시간에서 노인의 4시간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잠의 습성도 연령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따라서 30대 잠의 습성을 50대가 돼도 고집하는 것은 전혀 비현실적이다. 이 같은 비합리적 수면에 관한 집념은 수면장애의 원인이 된다.

남몰래 혼자 지니고 있는 비합리적인 수면에 대한 집념은 수면공포에 불러오게 된다. 수면공포란 일종의 수면장애로서 잠이 꼭 들어야 하는데 잠을 못잘까봐 두려워하는 공포이다. 잠들기를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데 잠이 왜 공포의 대상이 되느냐고 반문을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만성불면증을 경험해 본 사람만 이 잠자리에 들기가 얼마나 두려운지 알 수 있다.

『내가 오늘밤 또 못자면 큰일이다』하며 극도의 긴장으로 잠자리에 임하니까 졸음은 커녕 말똥말똥한 각성상태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그 공포가 심하면『나는 단 하룻밤만이라도 실컷 자보면 더 소원이 없고 내가 죽어도 한이 없다』는 등의 표현을 종종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수면공포가 있고 불면증이 만성화되면 우선 잠을 가져다주는 약물을 쓸 수 있으며 때로는 크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약물을 오래 쓰다보면 효과가 떨어지며 약의 효과가 없어졌다고 해서 약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은 약물에 의존성도 생기고 또 사정없이 용량을 늘리다보면 불의의 사고도 있게된다. 그래서 약물을 쓸 때는 약국 등에서 임의로 구입해 먹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서 먹어야한다.

불면증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정확한 진단을 내린 뒤에 약을 써야한다. 수면공포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잠을 무서워하는데 내포된 독특한 피해의식이 있다.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수면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이구동성으로 잠은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잠을 이루지 못함에 따른 잠에 대한 특수상황에서 그들은 너무나 생생한 드라마의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 바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이 드라마의 내용은 잠을 못잤을 경우에 있을 엄청난 결과들이다. 자기가 고집스럽게 정해놓은 어떤 수준의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있을 신체에 대한 해(害)를 상상하고 이 상상을 누적시키다 보면 그것이 절박한 건강문제로 귀착된다. 그럴수록 잠에 대한 불안은 깊어만 간다. 잠은 자연히 드는 것이지 자려고 노력하면 잠은 오지 않는다. 자연에 전적으로 맡길 때 전혀 의식하지 않는 순간 슬며시 잠에 빠지게 된다. 설혹 무슨 일이 생겨 하룻밤 잠을 설친다해도 그 못잔 잠은 며칠을 두고 차츰 보충하게 되어 있다. 때로는 잠이 안 올것 같으면 오늘은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독서로 밤을 지새우겠다는 결심을 해 보는 것도 좋다.

박정수 ·동화신경정신과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