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한국 트라피스트 수도원, 노동캠프

정경남 기자
입력일 2019-06-28 17:07:59 수정일 2019-06-28 17:07:59 발행일 1990-08-12 제 171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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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흘려 일하는” 참 의미 체득
밭 갈기 등 하루 6~8시간 작업
서울 지역 4백여 젊은이 참가
수도회 일과 중심 프로그램 통해 영성 배워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법원리에 위치한 한국 순교자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도원.

논과 밭ㆍ가축 사육장ㆍ양어장 그리고 28만여평의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이곳 트라피스트 수도원에는 요즘, 사정없이 내려쬐는 뜨거운 여름 햇살을 가르며 묵묵히 일하는 젊은이들의 땀흘리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매년 여름이면 각 본당청년단체 및 지구 청년연합회 소속 젊은이들이「기도하고 일하는」트라피스트 수도승들과 함께「더불어 기도하며 일하는」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이미 3년전부터 서울대교구내 젊은이들 사이에「노동 캠프」「노동 피정」등으로 일컬어지며 독특한 방법으로 진행되는 이 젊은이 캠프는 각 본당 청년들의 여름 행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7월말부터 8월중순까지, 짧게는 3박4일, 길게는 10여일의 기간동안 실시된다.

올 여름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찾는 젊은이들은 서울 구의동본당 청년회를 비롯 신천동본당 청년단체협의회, 공항동ㆍ화곡2동본당 등 강서ㆍ양천지구 청년연합회 그리고 압구정본당 청년회 등 4백여명에 이른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청년 노동 캠프는 3년전 폭우로 큰 수해를 입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돕기위해 서울대교구내 몇몇 본당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수해 복구작업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이 작업을 계기로 육체노동이 주는 신선한 의미를 깨달은 이들 청년들은「노동 캠프」라는 새롭고 독특한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이것은 농촌ㆍ공소봉사활동ㆍ도보성지순례ㆍ성지개발 근로봉사등과 함께 청년들의 중요한 여름 행사의 하나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노동 캠프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은 우선 침묵 안에서 일하는 법을 배운다.

경운기로 밭을 갈고 혹은 낫으로 풀 베는 이곳 수사들과 함께 땀 흘리며, 젊은이들은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생기를 불어 넣는지 직접 체험하게 된다.

『겨우 이것밖에 안됐네.』

『…….』

『이거 다 해야 되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것이 눈이고 가장 부지런한 것은 손이라고 합니다. 눈으로 보면 이 많은 일을 언제 다하나 싶지만 손으로 하고자 들면 금방 끝낼 수 있거든요.』

숨막히는 더위와 갈증, 유난히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 종종 침묵을 깨도록 만들지만, 하루 6~8시간의 작업은 노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마음에 새기기에 충분하다.

노동 캠프의 일정은 참가 본당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기도하고 일하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일과를 중심으로 본당ㆍ지구별 자체 프로그램이 첨가돼 있다.

무ㆍ배추밭 일구기, 잡초ㆍ피뽑기, 길닦기 등 수도원에서 원하는 일을 일차적으로 두면서 필요한 마을일까지 맡아 오전 오후 작업을 마치면 저녁식사 후 조별모임과 함께 수도원장 오무수 신부의 노동과 기도를 주제로 한 강의를 듣는다.

노동 캠프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젊은이들은 본당내지 지구 청년들의 결속을 다지는 캠프 파이어 혹은 대동제 등을 마련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노동 캠프를 통해 청년들은 육체노동이 주는 참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고, 동시에 이들의 도움을 얻은 우리 수도원에서는 이들 젊은이들에게 캠프만으로 얻을 수 없는 영적인 것들을 노동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불어넣어 주지요』

노동캠프의 의미를 밝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장 오무수 신부는『점차 늘어나는 신청자들을 위해 젊은이 단체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에 수도회의 영성을 보다 많이 부여해 정신노동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이들이 육체노동을 통해 정신이 맑아지고 신선해진다는 것을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혔다.

정경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