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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악마가 된 고발자」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19-03-26 16:05:14 수정일 2019-03-26 18:45:22 발행일 2019-03-31 제 3138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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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경 지음/309쪽/1만5000원/한님성서연구소 
‘악’을 제대로 알면 ‘악의 유혹’ 이길 수 있다
성경·외경 등 다양한 문헌 살펴
‘고발자’에서 ‘악의 우두머리’로
사탄의 탄생과 성장 과정 정리
교회는 사탄에 대해 ‘본래 하느님의 천사였으나 타락해 그분을 대적하는 악마가 됐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악마는 그리스어 ‘디아볼로스’에서 가져왔으며, 중상자, 반대자, 고발자를 뜻했다. 구약시대에는 악마라는 단어가 선악과 무관한 중립적인 용어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바빌론 유배 이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영원하리라 약속됐던 다윗 왕국이 멸망하고 바빌론으로의 유배라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유다 백성은 죄와 악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을 자신들의 죄악에서 찾고 회개를 부르짖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이 회개한 뒤에도 외국인의 지배가 계속되자 ‘좋으신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서 이토록 큰 악이 존재하게 됐는가’를 물으며 악에 대한 깊은 성찰로 나아가게 된다.

이 같은 악마 전승은 제2성전기 후반 유다교 안에서 폭넓게 발견됐으며 신약성경 저자들은 유다교 전통의 사탄 개념을 이어받아 신약성경 곳곳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요한 묵시록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미카엘 대천사와 싸우게 될 악마를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자’(12,9)라고 소개한다. 사탄의 역할이 온 세상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것으로 묘사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사탄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그분을 시험한 유혹자이자, 제자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해 마침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이끈 자, 공동체 안에서 거짓 교사들을 부추겨 거짓된 복음을 퍼뜨리는 자, 우리 마음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마지막 때에 미카엘 대천사 및 그리스도와 전쟁을 벌일 자로 언급된다. ‘반대자’ 혹은 ‘고발자’라는 뜻이었던 악마가 ‘악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산에서 유혹 받으신 예수’(1308~1311년).

한님성서연구소 송혜경 수석연구원은 단순한 고발자와 세상을 악으로 이끄는 악마 사이의 간극을 구약과 신약 중간기 작품을 통해 좁히고자 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부터 구약 외경과 쿰란 문헌, 신약성경과 신약 외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을 살피며 사탄이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했는지 공부했고, ‘사탄, 악마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완성했다. 「사탄, 악마가 된 고발자」는 이 논문을 바탕으로 2년간 연재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책에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사탄이 탄생하고 성장, 발전해 나간 과정들이 꼼꼼하게 담겨있다. 또한 고발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사탄이 악마의 대표적 이름이 되고, 나아가 영지주의 작품에 이르러 창조주의 위치에까지 오른 경위가 자세히 소개된다.

저자는 말한다. “사탄을 통해 저자들이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 앞에 도사린 어둠과 악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둠과 악을 제대로 알고 우리에게 그것들을 이길 힘이 있음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적극적으로 싸워 이겨야 하는 능동적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