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수도의 길목에서] 사랑에로의 도전/오 로베르따 수녀

입력일 2018-08-12 15:04:29 수정일 2018-08-12 15:04:29 발행일 1993-06-06 제 1858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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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실패 했나봐, 그러니까 수녀가 되려고 그러지.”

여기저기서 쑤군대는 이웃들의 입김으로 마침내 어머니는 몸져누우셨다. 60이 되도록 수녀 한번 본적이 없으신 어머니는 매년 봉화산 아래 있는 절에다가 식구들 이름 올려놓고서는 복을 빌으시었는데, 이런 어머니에게 몰래 교리받고 영세를 받던 딸이 쉽게 이해되어질리 없었다.

큰 병원에서 간호사로 자부심 갖고 인정받으며 살던 딸이 자랑스러웠는데 알지도 듣지도 못한 수녀원에 간다니. 수도자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사랑에 실패한 젊은 처녀들이 사랑도 하지 않고 평생 고신극기 하면서 세상과 결별하고 산다는 것을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창안해 낸 이웃들의 그럴싸한 묘안이 순식간에 온 동네를 술렁이게 했다. 이런 묘안에 동조되신 어머니께서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반기를 드시고 “절대 안 돼”라고 하셨다. 무슨 말로 이 여론을 타파하랴! 오직 침묵속에 어우러진 기도로써 나의 결심을 확고히 굳혀가며 긴 기다림의 결실로 들어선 수도의 길… 오해와 이해받지 못한 가운데 시작한 길이라 외로움으로 힘들었지만 그 외로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간절히 부를수 있는 이름은 예수님이었으니. 지금 십몇년 전의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난 그때의 거센 여론에 휩싸였던 지워지지 않는 말을 되새겨 본다.

“사랑에 실패 했나봐” 사랑에 실패하고 시작한 수도 생활은 아닌데 수도생활 하면서 사랑에 실패하는 순간을 자주 경험한다. 지구 저편에서는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난 번듯이 배불리 먹으면서도 마음의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잊은 듯이 살 때 사랑에 실패함을 깨닫는다. 내 할일 하느라 꽃동네에서 외롭게 기다리시던 어느 아저씨의 원을 채워드리지 못한 채 갑작스런 죽음을 통보를 받았을 때 난 사랑의 실패자임을 느낀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에 내 스스로 먼저 다가가 따뜻한 손길로 두 손 꼬옥 잡아주지 못할 때 나는 쓴 실패의 잔을 마시는 기분을 갖는다.

예수님처럼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자 들어선 수도의 길에서, 많은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새롭게 시작함은 또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고, 또 사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실패가 두려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실패, 성공을 떠나 사랑해야 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수도자로써 살아가는 나의 소명이기에 난 사랑에로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도 예수님 닮은 사랑의 고운 모습이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김희진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의 오 로베르따 수녀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