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기법의 전승
그래서 독특한 전승이 탄생했다. ‘야훼’의 자음에 ‘아도나이’(나의 주님)의 모음을 붙여 새로운 표기를 만든 것이다.(그림3) 이 표기는 ‘야훼’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는 세심한 ‘독법지침’이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곳마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귀 기울이라는 ‘영성지침’이다. 또는 아예 모음을 빼고 자음만 쓰기도 했는데, 이 표기는 ‘하느님의 이름을 표현하는 네 문자’라는 의미에서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 tetragrammaton)라 한다.(그림4) 물론 신명사문자도 ‘아도나이’(나의 주님)로 읽는다.
그런데 그리스어 성경을 주로 쓰던 그리스도교는 이 중요한 전승을 그만 망각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독특한 표기법이 하느님 이름의 고유한 표기라고 오해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이름을 ‘예호바’로 옮긴 오류의 시작은 1381년 도미니코회원 마르티누스(Raymundus Martinus)의 저술이다. 그리고 레오 10세 교황의 고해신부였던 갈라티누스(Petrus Galatinus) 등이 이 오류를 확산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 결과 16세기 이후 제단이나 성화 등에 ‘예호바’라는 이름이 자주 쓰였고, 종교개혁 전통에서 더욱 확산되었다.
하지만 현재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대부분의 교회는 오류를 바로잡았다. 최근의 영어성경은 대개 하느님의 이름을 Lord나 대문자 LORD로 옮기는데, ‘아도나이’의 독법을 따른 것이다. 우리말 번역본도 사정이 비슷하다. 가톨릭 교회의 「성경」은 굵은 글자의 ‘주님’으로, 개신교회의 「표준새번역」은 보통글자의 ‘주님’으로 옮겨 이 전통에 참여한다.
■ 살아있는 하느님 표기
그런데 현대 라삐들의 영어 저작에서 ‘God’이란 낱말을 ‘G-d’ 또는 ‘G-D’로 적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독일어로 ‘Gott’를 ‘G-tt’로 적는 글도 보았다. 이는 자음만 적는 신명사문자의 방식을 현대어에 적용한 것이다. 이 표기법을 보며 필자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하느님의 표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라삐들의 깊은 신앙심을 접한 것 같아서였다. 성경 히브리어만의 독특한 표기법을 오늘날에 살려내는 그들의 노력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실로 수천 년의 전승을 잇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에 영감을 받아 필자는 20여년 전부터 노트에 ‘하느님’을 ‘ㅎㄴㄴ’으로 적고 있다.(그림4)
물론 이런 표기는 필기속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 뿐만 아니라 ‘ㅎㄴㄴ’ 표기는 종이에 쓰든 컴퓨터 화면이든 눈에 잘 띄기 때문에, ‘하느님’에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서 좋다. ‘ㅎㄴㄴ ㄴㄹ’(하느님 나라) 또는 ‘ㅎㄴㄴ ㅂㅅ’(하느님 백성) 등으로 확장해서 간편히 사용할 수도 있다. 한글의 빼어난 확장성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셈어(히브리어)와 인도유럽어(독일어, 영어)에서 발전된 독특한 표기법을 이렇게 언어형식적으로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는 문자는 흔하지 않다.
한민족 복음전파의 결정적 계기가 되신 성 김대건 신부님 축일이다. 부디 성경원어와 우리말이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는다. 구세사 수천 년의 전승이 이 땅에서도 생생히 살아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