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안네의 일기

입력일 2017-06-08 18:28:50 수정일 2017-06-08 18:28:50 발행일 1992-06-14 제 180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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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인간적인 증언
나찌 잔악성ㆍ전쟁속 사랑그려 
“화해ㆍ선ㆍ평화” 를 간절히 호소
나치의 독재자들이 사람들에게 행한 그 엄청난 범죄들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것이다. 「안네 프랭크의 일기」는 바로 이 기억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안네 프랭크는 1929년 6월 12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태인 부모사이에서 태어났다. 안네의 가족은 1933년 유태인 박해가 입박해질 무렵 암스텔담으로 이사를 갔다. 1940년 히틀러의 군대가 네델란드를 점령하자 이곳에서도 유태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안네 프랭크는 1942년 6월 12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며 프랭크 가족은 1942년 7월 9일부터 1944년 8월 4일까지 다른 유태인 네 가족들과 함께 프린슨그락흐트 263번지의 골방에서 숨어 살았다. 1944년 8월4일이 은신처가 발각되어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이들은 베스트보르크 수용소를 거쳐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아버지 오또 프랭크 외에 살아남는 가족은 아무도 없는데 어머니는 1945년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하고 안네와 그의 언니 마르고트는 베르겐-벨센에서 죽었다.

안네 프랭크는 체포되기 며칠전인 1944년 8월 1일에 마지막 일기를 적어 놓았다. 아버지 오또 프랭크는 1980년에 바젤에서 죽었는데 자기 딸 안네의 뜻에 따라 이 일기를 출판하게 되었었다.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안네 프랭크의 일기는 세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로 프린슨그락흐트 263번지의 골방에서 숨어있던 2년간의 생활상을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8명이 어떤 여건하에서 함께 살았는지 얼마나 큰 공포심에 휩싸여 살았는지 그리고 그들 서로가 경험한 좋고 나쁜 경험들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당시 상황과 역사적 암시들도 들어있다.

따라서 이 일기는 역사적 증언이다.

두번째로 열세살 먹은 순진한 소녀 안네 프랭크가 섬세한 열다섯 처녀로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이 일기는 안네의 친한 친구였다. 그래서 일기를 쓸때마다「사랑스런 키티」라 불렀다. 그녀의 느낌, 그녀의 걱정과 문제들, 그녀의 경험들을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대로 썼다. 그리고 골방에 함께 숨어살던 피터 반단과의 섬세한 사랑의 이야기도 엮어져 있다. 안네는 문인이 되고자 했다. 언어ㆍ예술ㆍ문화에 대한 그녀의 노력의 흔적도 보인다.

그리고 세번째 이 일기가 보내주는 메세지가 있다. 안네 프랭크와 같은 유태인 소녀를 의식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그 나쁜 체험들에도 불구하고(그 외에 독일과 유태인 사이의 적대감보다도 더 나쁜관계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소녀는 화해에 대한 동경심을 그 일기에 남겨놓았다.

『내가 모든 희망을 다 버리지 않은 것은 하나의 기적인 것 같다. 이 희망은 어리석고 결코 이룰수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희망을 꼭 붙잡고 있다. 어찌되었던! 왜냐하면 나는 사람의 마음속에 착한 점을 아직도 꼭 믿고있으니까, 모든 것을 죽음·비참함 그리고 혼란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세운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이 서서히 사막으로 변해가는것을 보고있다. 시끄럽게 울려오는 벼락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있다.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수백만의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모든 것이 다시 좋게 변할 것이라고, 가혹함도 중지될 것이라고 세상에 다시금 평화가 올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히틀러정부의 수많은 이 모든 소름끼치는 일들과 괴롭힘과 살해들, 수백만의 죄없는 여자들 남자 어린아이들이 무참하게 희생된 이모든 것들이 결코 잊혀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힘이, 선이, 엄청난 희망이 결국 이긴다는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때문에 안네 프랭크의 일기는 중요한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