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이윤자 칼럼] 꿈을 꾸는 사람이 되자

입력일 2017-02-06 18:04:12 수정일 2017-02-06 18:04:12 발행일 1993-01-03 제 183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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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작은 내 시야 속에서 대통령은 가장 큰 사람으로 비춰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대통령의 권위는 막강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꿈이었을 것이다. 2학년인가 3학년 시절 그 꿈은 국회의원쯤으로 강등되었다. 다시 4학년 무렵인가 내가 이루어야할 마지막 꿈은 어느새 여판사가 되어있었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황판사 사건」, 사리판단이 어려운 나이었지만 연일 신문에 머리기사로 장식됐던 그 유명한 황판사 사건은 어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진 정의감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이었다. 판사가 되고자 했던 최대의 목적이 그녀를 살해한 미지의 인물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으니까.

미궁으로 빠진 사건, 아직도 미해결의 사건인 황판사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알 리가 없는 나이였지만 아마도 어른들의 대화 내용이 내 판단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 틀림이 없을 터였다. 우리나라의 첫 여성판사, 미모와 재능이 겸비된 사람으로서 그녀에 대한 추모기사는 황판사를 10살 내 마음의 영웅으로 올려놓기엔 참으로 충분했었다.

억울하게 죽은 그녀의 사건을 해결해 주기위해 판사가 되겠다며 주먹을 쥐던 내 모습은 아직도 어머니께서 기억해 내시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자화상이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는 바로 그 다음해에 내 꿈이 기자라는 것으로 바뀌었음을 증언해 주셨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5학년 때 꾸었던 꿈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 되어버렸다. 특수 주간지 기자도 기자로 분류가 된다면….

기자라는 직분으로 내 꿈을 바꾸었던 기억은 내게도 남아 있다. 한 살을 더 먹으면서 나는 판사라는 위치보다는 기자라는 위치가 황판사에 대한 복수를 하기에 더 매력적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렸었던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판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지를 일찌감치 알아차렸다는 것이 더 솔직한 이유가 될 것이다.

당시는 아주 「소박한 과외공부」가 성행했는데 내 과외선생님은 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법관이 되기 위해 밤마다 코피를 쏟곤 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허약해서 코피 흘리는 일을 매일처럼 연출하던 나에게 건장하기 짝이 없는 과외선생님의 코피는 일찌감치 판사에로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어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분은 오를 수 없는 나무를 일찌감치 포기하게 해준 은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사람들의 꿈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표현해내는 거울과도 같다. 내가 내 의지로 가졌던 대통령에의 꿈은 당시로선 매우 흔해 빠진 꿈이었다. 어린아이들의 대표적 꿈이 대통령이었으니까.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은 더 이상 어린아이들의 꿈이 되지 못했다. 군인이라는 특수신분만이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비춰지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군인, 나아가 장군이 되겠다는 어린아이들이 늘어난 것도 그 시절이었다. 대통령보다도 장군이 미래의 꿈으로 선호되던 시절에도 여전히 판검사는 가장 윗질의 꿈으로 남아있었다. 그 꿈은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부모들의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지만. 의사가 미래의 꿈으로 선풍을 일으킨 것도 아마 그 즈음부터였을 것이다.

판검사, 의사가 여전히 1등의 꿈으로 남아있는 동안에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나 국회의원 등 정치가를 꿈꾸는 아이들의 수는 아예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어버렸다. 우스갯소리에도 부담 없이 등장하는 정치가들에 대한 비아냥을 생각한다면 어린아이들의 미래의 꿈으로 더 이상 정치가가 선택되지 않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동안의 우리 정치는 못해도 너무 못했다. 민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정치인지 아니면 민도가 낮아서 정치가 그 모양이었는지 구분이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정치는 지난 수십 년간 밑바닥을 헤매기만 했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정치가, 공직자는 매력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혐오의 대상으로 분류가 되어버렸다고도 말들을 한다.

물론 정치가나 공직자에게 무조건 모든 짐을 덤터기로 씌울 작정은 결코 아니다. 이들에 대한 시선이 엄격한 것은 바로 이들이 공인이기 때문인 것이다. 공인이라는 어깨에 짐 지어진 책임은 그만큼 무겁고 크다. 공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사롭지가 않다. 따갑고도 날카롭다. 바로 이름 그대로 공인이기 때문이다.

밝고 건강한 꿈이 밝고 건강한 사회를 가능케 할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가를 꿈꾸는 어린이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정치가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있다면 우리 정치가 건강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지금, 다양한 꿈이 필요하다. 돈과 명예 권력과는 무관하지만 행복하고 바르게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그 꿈속에서 찾아내야만 한다. 결코 어떤 모양의 미래를 꿈꾸어도 창피하지 않는 꿈, 그 꿈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오염되지 않은 투명한 꿈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 우리에겐 미래라는 꿈이 필요하다.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인 우리에게도 그 꿈은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루는 그런 꿈이 아니라 투명한 영혼 안에서 거듭 축적된 그런 꿈이 필요하다. 어른인 우리가 그 꿈의 길을 터 주어야 한다. 그 길은 우리가 먼저 투명하고 맑고 건강한 꿈을 갖고 살 때만이 열릴 것이다.

<취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