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서울, 광주, 수원교구 차원의 ‘성주간 국악성가 배움터’와 광주 봉선2동성당, 서울 역촌동성당에서 ‘국악미사곡 배움터’가 열렸습니다. 함께하신 분들이 모두 “참 좋았다”며 행복해하셨습니다. 해마다 이렇게 크고 작은 국악성가 배움터가 여러 지역에서 열리곤 하는데 이 배움터의 시초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6월 6일 명상의 집에서 열린 국악성가 교육이 성황리에 끝난 후, 이 모임을 주관하셨던 김달(엘리사벳) 자매님은 하루 교육 가지고는 부족하니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국악성가를 배울 수 있는 배움의 장을 열어달라고 저를 조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교육 때 이미 미사곡을 다 가르쳤으니 그 외에 더 이상 가르칠 거리가 없다고 정중하게 사양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매님은 막무가내셨습니다. 무조건 더 배우고 싶다고 계속 조르시는 것이었어요. 그 끈기에 두 손을 들었지요. 그래서 제가 쉬는 날을 하루 희생하기로 하고 매월 셋째 주 월요일 강습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이때 그 모임의 이름을 ‘국악성가 배움터’로 정한 것입니다. 장소는 광주 염주동성당을 빌려 쓰기로 했는데 당시 본당 수녀로 계시던 레오니아 수녀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일이 성사되자 신이 난 자매님은 열정적으로 홍보에 나섰고, 드디어 1993년 7월 19일 염주동성당에서 최초의 ‘국악성가 배움터’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큰일이 난 거예요. 매달 한 번씩 국악성가를 가르쳐야 하니까 매달 새롭게 작곡을 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된 것이지요. 지금 돌아보면 이것 역시 하느님의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배움터를 통해 다양한 국악성가들이 만들어지게 됐으니까요. 주일과 대축일에 부를 수 있는 화답송과 알렐루야가 우선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따로 가사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호산나 다윗의 후손’ ‘우리 주님 가시네’ ‘아드님 따라가시네’ ‘성 금요일 성시’ ‘비탄의 노래’ ‘성령 송가’ ‘순교 성인 찬가’ ‘하늘로 오르시네’ ‘성모찬송’ ‘구세주의 존귀하신 어머니’ ‘성모 마리아여’ ‘성모님과 함께’ ‘위령 성월에’ 등의 곡들이 이 시기에 작곡됐습니다. 또한 당시 사랑의 씨튼 수녀회 관구장이셨던 문 말린 수녀님의 부탁으로 ‘국악 묵주기도’와 ‘성무일도 제1주간 주일의 아침, 저녁 기도’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국악성가 배움터’는 이듬해 11월 21일까지 총 15회가 진행됐습니다. 당시 배움터에 함께하신 신자 분들은 모두들 참 행복해하셨어요. 매달 새롭게 작곡된 따끈따끈한 곡들을 함께 부르면서 국악의 다양한 시김새들과 장단들을 익히시는 것이, 그리고 시편이나 성가의 가사에 담긴 뜻을 신앙생활과 연결해 풀이해 드리는 것이 참 좋으셨던가 봐요. 물론 저도 참 행복했지요. 신자들과 함께 국악성가를 만들어 부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최초의 ‘국악성가 배움터’는 ‘국악성가’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 모태 역할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