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있는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학원 간판과 각종 현수막에 눈이 어지럽다. 노량진 고시촌에는 공무원학원과 임용고시학원 등 학원 수만 40여 개, 골목골목 자리하고 있는 고시원은 약 200여 개에 달한다. 이곳 노량진 고시촌에는 전국 각지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모여든 1만여 명의 수험생이 상주하고 있다. 고시촌에 있는 서점, 독서실, 식당 등 모든 것은 수험생에게 특화돼 있다. 북적대는 고시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서울 노량진동본당(주임 박준호 신부)도 관할 내 청년수험생 신자들을 위한 맞춤사목을 펼치고 있어 화제다.
“사랑합니다.”
17일 오후 6시 40분. 레지오 단원들이 미사 참례자들에게 주보를 나눠주며 반갑게 인사했다. 미사 시작 시각이 가까워지면서 주보를 나눠주는 노량진동본당 청년 레지오 단원들의 손길도 분주해졌다. 서둘러 미사에 참례하고자 다소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성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신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성당 안은 이미 미사 시작을 기다리는 청년들로 가득 찼다. 매 주일 오후 7시 봉헌되는 청년미사에는 평균적으로 약 200여 명의 청년신자가 미사에 참례한다. 이들 대부분은 인근 고시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험생들이다.
노량진동본당은 청년수험생 신자들을 배려한 다양한 사목 활동을 진행 중이다. 우선 청년미사에 참례하는 학생들을 위해 매주 간식을 준비하는 한편 매월 매일미사 책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본당 주임 박준호 신부는 청년미사 전 고해성사 시간을 40분으로 늘려 더 많은 청년수험생들이 성사를 드릴 수 있도록 했다. 압박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우울증에 빠질 수 있는 청년들이 죄의 치유뿐만 아니라 영혼의 치유도 함께 이룰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또한 수험생들에게 성당 교리실과 만남의 방을 개방해 학습실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성당 교리실과 만남의 방은 예약하기 까다롭고 사용시간도 엄격하게 제한되는 고시촌 내 스터디 룸에 비해 간단한 신청 만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료로 개방되기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수험생들에게 인기가 좋다.
노량진동본당은 청년들을 위해 더 많은 사목적 배려를 제공하고 싶지만, 턱 없이 부족한 예산으로는 간식값을 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청년들이 가진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목적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다. 다행히 예전보다 수험생을 향한 본당 신자들의 관심이 커졌고 최근에는 지구로부터 600만 원을 지원받아 재정적으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노량진동본당은 앞으로 ‘수험생의 날’과 같은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일 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시험의 압박감에서 해방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취지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밝힌 윤선(스텔라·28)씨는 “수험생활은 자기 자신과 1:1로 마주할 수 있는 시기”라며 “신앙이 있기에 마음의 위로를 얻고 힘을 내 공부에 정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호 신부는 “교회는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고시생들이 신앙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고 장차 사회와 교회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