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죄는 하느님을 져버린 행위이지만、사람은 그안에 설령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는 정치적으로 헤로데 일당과는 정적이었고、종교적으로 볼때도 당시 중산층에 속했던 바리사이들과 또、상류층이던 사두가 이들과도 원수였었다. 그런데도 예수는 이들 헤로데 일파의 고관아들의 병을 치유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셨고、바리사이가 식사초대를 했을때도 기꺼이 허락하셨다.
예수께서는 불의와 죄악을 대항해서 싸우셨다기 보다는、반대로 선과 의를 위해 투쟁하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죽기까지 용서하셨고、죽으심으로 해주셨음을、우리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한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해야하며 하느님께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라도、남을 진정으로 용서해 주어야 한다.
원수를 정말 사랑할 수까지 없다고 한다면ㅡ적어도 미워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권리는 있겠지만ㅡ미워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용서는 어떤 핑계가 있을 수 없고、조건이 따를 수도 없다.
죄인과 원수를 용서하는것은、하느님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며、그 뜻을 실천하는 결과가 된다.
유대 동쪽에서 피와 땀으로 모은 재산을 세금으로 거두어、로마 황제에게 상납한다는 것은 역적이며 매국노이다.
이같은 사람들이 유대사회의 세리였기에、그들의 속담에 『세리와 이방인들을 개처럼 대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적대하였고 배척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세무서장 자케오 집에 머무시겠다는 선언을 보라、또 범죄하다가 현장에서 체포한 창녀를 예수 앞에 데리고 와서 모게의 율법대로 돌로 쳐죽이겠다는 그들 앞에、예수는 뭐라고 말했겠는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시오』하고 나서 『나도 너를 죄인으로 판단치 않겠으니、가서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고 타일러 주셨던 것이다.
이 처럼 예수에게 있어서 죄인과 원수는 가까운 친구사이로 생각하였고 다정한 벗으로 간주하셨다.
죄는 순간적으로 또는、어떤 상황속에서 반사적으로 범할 수 있는 행위이지만、악은 상습적이고 계획적인 연속행위라는 점에서 구별된다.그러기에 예수께서도 죄인들과는 어울리셨지만、악인들과는 동반하신 일이 없었다.
예수가 죄인들의 친구라고 하는 이유는 바리사이들과 사투가이들 그리고、원로、학자. 사제장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이들이 죄인으로 판단한 사람들과 한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고 원수들을 사랑하실 수 있었던 점은 이들이 당신의 벗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모두가 죄인이다. 이와같이 예수께서는 죄인들과 원수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고 이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으셨다.
우리는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느님께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찬들은 예수의 모범을 따라 용서해주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게 될때 거룩하고 완전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