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데스크칼럼] 선입견과 편견

입력일 2007-03-11 17:06:00 수정일 2007-03-11 17:06:00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자식 자랑이야 공공연히 할 것이 아니지만 큰 아이가 성품이 온후하다는 점은 기특하다. 이 아이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관대하고 너그럽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좀 답답스럽기도 하다.

대조적으로 둘째 아이는 똑 부러지고, 자기 고집과 주장이 강하며 저 할 일에 대해서는 명확한 태도를 보인다. 하기 싫은 일은 잘 안하지만 마음이 가는 일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높은 집중력을 보여서 성과도 높다.

대략 요 정도로 아이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런데, 종종 내가 아는 이런 사실들이 선입견이거나 편견임이 증명되곤 한다. 물론 대부분 내가 예측하는대로 아이들이 행동하고 반응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을 일러 선입견, 혹은 선입관이라고 한다.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은 편견이라고 한다. 두 개념 모두 자기 스스로 마음 속에 굳어져 있는 사고 방식을 일러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사고는 결국 자기 자신의 삶의 경험, 자신의 사고 지평 안에서만 그 온전한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최근 도올의 성경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화제이다. 그는 “구약성경은 유다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라며 구약의 폐기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주장은 소설 ‘다빈치 코드’가 발휘한 상상력이나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예수의 무덤’의 주장들 만큼이나 발칙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교계에서는 불쾌해 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있다. 도올은 대표를 지정해 내세운다면 공개토론을 할 용의가 있다며 도발적이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진지하게 대처하자니 애당초 경솔하다고 판단하는 주장에 심각하게 대응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될 것이고,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보자니 도올이 지닌 대중적 인기로 인한 상당한 파급 효과를 무시할 수도 없다.

가톨릭계에서는 그나마 대응 발언을 한 신학자가 차동엽 신부이다. 차신부의 도올과의 1라운드는 이미 수년 전 일이다. 지난 2004년 본지에 연재된 ‘이것이 가톨릭이다’란 칼럼에서 차신부는 9회에 걸쳐 도올을 비판했다.

당시 도올은 이 연재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원로라 할 만한 그의 처지에 그리 연배가 높지 않은 차신부의 딴지에 ‘대응’하는 것은 난처한 입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차신부는 이번에도 가톨릭측에서는 유일하게 발언을 했다. 한마디로 도올은 ‘궤변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일이 맞대응하기도, 안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물론 도올이 시리즈처럼, 구약성경 비판에 이어 주장하는 한국 기독교계의 편협성에 대한 비판은 일리는 있다.

하지만 애 키우는 필자가 내 아이들에 대해서조차 선입견과 편견을 조심해야 하는 처지에, 쇄신의 필요성을 항상 보유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깊이와 진지함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교 교회와 교리를 그리도 쉽게 함부로 거론하는 것은 매너 문제를 넘어서 경박함이 아닐 수 없다.

박영호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