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의사 윤리지침에 포함시킨 이른바 「소극적 안락사」는 최근 네덜란드에서 합법적 행위로 규정한 「안락사」와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 나라에서도 안락사 문제가 앞으로 커다란 논쟁거리가 될 것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지침 중 제30조 「회복 불능 환자의 진료 중단」부분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본인, 또는 그 가족이 문서로 진료 중단을 요구할 경우 의사는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규정이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이미 소극적 안락사가 관행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며 경제적 부담과 불필요한 의료 행위 방지 등에 대한 의견도 있지만 현재 실정법상 어떤 형태의 안락사도 처벌대상이 되고 있기도 해 앞으로 사회적으로 폭넓은 논의가 더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락사에 대한 각계 입장
네덜란드에서 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빠르면 올 여름부터 시행할 수 있게 된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로 물리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죽음을 직접 초래케 하는 「안락 살해」인 반면 「소극적 안락사」는 일상적인 의료 행위를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죽게 하는 소극적인 방법이다.
이에 대해 종교계는 당연히 생명의 존엄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 속한 것으로 인간의 판단으로 생명을 단축시켜서는 안된다』며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안락사는 살인행위』라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위원회도 반대입장을 표시했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정리된 견해는 없지만 『생명의 주권이 의사나 가족에게 있지 않다는 원칙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안락살해’는 살인행위
안락사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입장은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 두 말할 나위 없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의 측면에서 인위적으로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 살해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도 「안락 살해」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회의 기본 입장이다.
반면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인간의 조건에 따라 신중하게 처리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즉 말기암 환자처럼 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에 대해 인공호흡기로 단순히 생명만을 연장하는 경우, 예외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생명을 연명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의협 역시 윤리지침이 문제시되자 즉시 「안락사와 관련한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이라는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안락사를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문제점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김정우 신부(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원장, 윤리신학)는 『의협의 윤리지침 규정에서 ‘진료’의 중단이 치료의 중단으로 받아들여져야지 간호(진통제 투여, 수분 및 영양공급)의 중단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며 『진료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세부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영선 교수(가톨릭대 성모병원 종양내과, 한국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는 『소극적 안락사를 빌미로 안락사 허용이 논의돼서는 안된다』며 『관행으로 이미 이뤄지고 있는 소극적 안락사로 분류될 수 있는 치료 중단은 적극적 안락사와 같은 「안락살해」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고려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논란이 「안락살해」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다.「안락살해」는 살인행위이며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로 보는 교회의 입장에서는 어떤 타협도 불가능하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