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음악] 오르간 쓰는 법

李文根
입력일 2021-03-22 10:48:23 수정일 2023-10-04 15:18:08 발행일 1960-01-31 제 214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聖堂(성당) 안에서 오르간을 쓸 수 있는 때와 없는 때
반주는 노래의 뒷받침 정도로

오르간이라면 본시 파이프오르간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실정으로는 파이프오르간이란 구경하기 조차 임이 드는 터이므로 하르모니움 혹은 아메리칸 리드 오르간 또는 기껏해야 요새 미국에서 나오는 전기오르간 쯤으로 알아듣는 것이 오히려 간편할 것 같다.

그러면 먼저 오느날 오르간을 사용할 수 있나 아니 그보다도 어느날 오르간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나를 살펴보자. 원칙적으로 장림시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이런 시기의 에도 예수수난의 허원미사(Missa v tva e passione D. N. I. C.)를 지낼 때 그리고 연령을 위한 성모가 집행될 때 오르간의 사용이 금지된다. 그러나 장림시기 제삼주일(Gaudete-주안에 항상 즐거워할지어다)와, 사순절 제사주일(Laetare-예루살렘아 즐거워하라) 이 두 주일은 제대를 꽃으로 꾸밀수도 있고 미사 때에 오르간 사용도 허락되어 있다. 본시 미사때만 허락된 것이나 그후에 같은날 오후 만과(Ad Vesperas)를 성대히 노래로 할때엔 그때도 오르간의 사용이 묵인되게 되었다.

또한 위에 말한바 오르간 사용이 금지된 그런 시기라도 만일 미사나 다른 성무일과가 그 시기에 관한 것일 때 금지 된 것 뿐이다. 즉, 그런 시기중에라도 미사나 성무일과가 어떤 다른 첨례에 관한 것일 때는 오르간이 허락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성 마지아(2월 25일), 성 도마스(3월 7일), 성 분도(3월 20일), 성 요셉(3월 19일). 성모영보(3월 25일) 등, 첨례는 흔히 사순절에 들거 되는데 어떤 본당에서 이런 첨례에 창미사를 지낸다고 하면 그때 오르간을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끄뿐 아니라 성주간 건립성체대례의 날과 성토요일 영복송을 외우는 동안도 오르간이 허락된다. 이때는 두 가지 모양으로 오르간을 사용할 수 있다. 즉 하나는 사제가 영복송 시작을(lntnatio) 노래한 다음 동시에 큰 종과 적은 종이 울리게 되기 때문에 사제가 영복송을 끝까지 외우고 종소리가 멎을 때까지 오르간은 독주를 하고 종소리(적어도 성당내에서 치는 방울소리)가 멎은 다음 노래를 하게 하는 것이오 또 하나는 종소리야 나건말건 그대로 오르간 반주로 영복송의 노래를 그대로 강행하는 등이다. 또한 성토요일의 영복송이 시작되는 그순간부터 사순절이 끝인다는 것은 참고삼아 말하여둔다.

언뜻보아 칠순, 육순, 오순주일에도 제의의 빛갈이 자색이기 때문에 오르간의 사용이 좀 계면쩍게 생각이 늘찌 모르나 이런 주일들은 단순히 사순절을 준비하는 기간일 뿐이므로 오르간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또한 성목요일부터 성금요일 아침까지 성체를 봉안소에 뫼시게 되는데 그 앞에 조배하는 동안 혹은 신공도 하고 혹은 성가도 부르는데 이 성가를 부르는 동안 오르간의 반주가 있어도 그대로 묵인하기로 되어있다. 오르간의 반주뿐 아니라 다른 현악기가 들어도 무방한 것이다.

이상 말한바와 같은 「오르간이 금지된 때」를 제외하고서는 년중 언제나 성당에서 오르간을 사용할 수 있다.

오르간을 사용할 수 있는 날에도 주의해야할 것은 사제 부제 똔느 차부제가 단독으로 어떤 노래를 할 때는 그 노래의 반주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사제가 영복송 신경을 시작할 때, 예전적 인사를 할 때(Dominus v b scum…) 감사서문경이나 천주경을 노래할 때 부제가 성경을 노래하거나 미사 끝에 “Ite missa est”를 할 때 또는 차부제가 서간경을 읽을 때 등 오르간 반주가 있어서는 안된다.

성당에서의 오르간의 역할은 대체로 이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1, 노래를 반주하는 일 2, 노래와의 교착(交錯) 3, 전주(前奏) 간주(間奏) 또한 후주(後奏) 즉 독주(獨奏)

이상 세 가지 역할을 차례로 설명해 보기로 한다.

1, 노래의 반주 어떤 곡은 그 곡 자체가 반주를 요구하고 반주없이는 그 곡을 생각할 수도 업슨ㄴ 것이 있다. 이런 경우 그 반주의 부분을 오르간이 담당한다. 그러나 예를 들면 그레고리안성가나 고전적 다성악(古典的 多聲樂)같이 반주가 본시없는 곡도 있다. 이런 곡은 물론 훌륭한 성가대라면 반주없이 노래할 수 있겠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러나 적은 본당의 성가대에 이만한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은 과중한 일이 되고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아무래도 너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복소리를 「뒷받침해주는 정도」로 그레고리안성가까지도 반주를 해오 무방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또한 오르간의 사용이 금지된 때에라도 노래하는 사람들의 힘을 덜고 도와주는 의미로 역시 그들의 목소리를 「뒷받침 해주는 정도」로 반주해주는 것은 교회에서 묵인하고 있다.

2, 다음 노래와의 교착이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 방법인데 이것은 예를들면 기리에를 노래하는데 있어 구절은 성가대가 하고 또 다음구절은 한사람이나 두사람만이 곧은 조(調)로 (Rect ton) 똑똑하게 낭독을 하는데 이 낭독을 하는동안 오르간이 자유로이 짤막한 곡을 연주하고 그 다음 구절을 또다시 성가대가 노래로 하는 등의 방법이다. 이것은 큰첨례 때가 아닌 창미사 때 쓰이는 방법이기는 하나 요즘와서는 이 방법이 너무 비 예술적이라서 그런지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3, 마지막으로 노래와는 아모 관계없이 오르간만을 연주하는 것, 즉 오르간 독주의 문제이다. 위에 말한바와 같이 독주는 전주, 간주 후주의 세 모양으로 될 수 있다. 이런 독주는 A, 미사 시작, 즉 사제가 성당에 들어올 때부터 (혹은, 그 조곰전부터) 초입경의 노래가 시작될 때까지 B, 제헌정이 끝난뒤 감사서문경이 시작될 때까지 C, 거양성체 동안 D, 「베네딕뚜스」후

그러나 주의해야할 것은 만일 그레고리안성가로 창미사가 올려질 때는 「상뚜스」와 「베네딕뚜스」를 그대로 연결하여 거양성체 전에 다 노래하고 다성악이나 ㅏㅂ창인 경우에는 「상뚜스」만 거양성체 전에 노래하고 「베네딕뚜스」는 종전대로 거양성체 후에 노래하게 된다. 이것은 다성악이나 합창인 경우 「상뚜스」와 「베네딕뚜스」를 붙여 노래하면 대개의 경우 거양성체 하기 전에 사제가 제대에서 쓸데없이 너무 오래 기다리게되는 까닭이다. 1958년 9월 3일 새로나온 예뿌성성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또한 동지시는 거양성체에서부터 천주경까지 완전한 침묵이 지켜지기를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런 노래도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도 없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권고뿐이요 명령은 아니기때문에 오르간으로 어떤 곡을 연주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오히려 슈밋트같은 이도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음악을 교우들 귀에 들려주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라는 뜻의 말을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거양성체후라면 미사중에도 가장 중요하고 엄숙한 순간인 만큼 「엄숙하고 감미로운 음으로」“Graci ri acdulci ri S n” 되는 곡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E, 아뉴스 데이 후에 영성체경을 시작하기 전까지 F, 영성체 하는 동안 G, 이떼 미싸 에스뜨 후에 교우들이 성당에서 나갈 때까지

이상과 같이 오르간을 독주할 수 있다.

오르가니스트가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오르간이 노래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완전한 자유로 퍼져나가는데 오르간은 그 뒤에서 받쳐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르간의 소리가 노래소리를 덮어버리면 안된다는 말이다. 특히 그레고리안성가를 반주할 때 그렇다.

또한 간주곡 같은 것을 연주하다가도 사제가 어떤 노래를 시작할 때가 되면 곡을 아직 다 연주하지 못했더라도 그 때 그 때 적당한 종지형을(Cadence-終止) 찾아내어 그칠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가톨릭교회 오르가니스트의 특유한 기교고 또한 자랑꺼리도 되는 일이다. 즉 사제가 제대 위에서 노래나 악기소리가 끝날 때를 기다리게 하여서는 안될 말이다.

따라서 오르가니스트는 미사나 다른 예쩔을 잘 알아야 한다. 예절을 모르고서는 위에 말한 바를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마디 성체 강복에 대해서 말하겠다. 성체강복은 미사나 성무일과 같이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의 예전적 행동은 아니다. 그러므로 오르간이 금지된 때에라도 오르간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독주를 해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李文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