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불에 빨래를 올려놓고 아래층에 내려가 있었다.
모 우유회사에서 판촉 나온 아줌마가『여기 혹시 빨래 올려놓은 집 없어요』할 때까지 나는 행주 삶는 일을 깜박 잊고 있었다. 「아차 큰일났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단걸음에 현관문을 열자 온 집안은 매운 연기로 가득했고, 빨래는 까맣게 타버렸다.
위층에서는 연기가 나서 집안 곳곳을 살폈다고 하는데 아래층에서는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었으니 그때서야 연기는 위로 차오른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아래 윗층에서 사람들이 모이자 고마운 생각은 뒤로하고 어찌나 미안하고 겸연쩍던지.
사양하는 사람들을 앉게 하고 차를 대접했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우유 판촉 나온 아줌마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 거듭했을 때, 아줌마는 내게 1. 우유를 권했다. 어쩌면 끔직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건만 입장이 난처해졌다.
이사온 지 7년 동안 아직 한 번도 판촉물 받아가며 먹고 있던 우유를 다른 우유로 바꾼 적이 없다. 왠지 그러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새로운 것, 신제품 하나사면 다른 것 여러 개 끼워서 주는 것, 유행…등을 싫어하는 나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너무 고마와서 우유를 바꿨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허나 한편 생각하면 또 그러지도 못할 입장이 된다. 지금 받는 우유 아줌마는 우리본당 예비자다. 원래 성당에 마음이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입교를 권할 수 있었고, 스스로도 잘해나갔다. 우리는 판매원과 소비자의 관계를 떠나서 각별한 사이로 좋은 이웃이 되었다.
더욱 좋은 일은 판촉 나온 아줌마도 교우라는 것이었다. 나의 난처한 입장을 자매님은 이해해주었고 자리를 뜰 때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거제리본당이라던 자매님께 다시 한 번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