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김수환 추기경 기독교 방송과 대담

입력일 2020-01-03 03:50:00 수정일 2020-01-03 03:50:00 발행일 1986-05-25 제 150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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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보도는 개헌보다 시급”

현실개선이 민주화의 지름길 
과격투쟁은 부조리한 현상 탓
정치의 본 목적은 인간다운 삶 보장에
김수환 추기경은 최근 기독교방송의 고정프로『원로와의 대담-오늘을 생각하며』에 출연. 교회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안문제 전반에 걸쳐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숭전대 이삼열 교수와의 대담형식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5월 12일 첫 방송이 시작됐으며 24일까지 2주일간 계속됐다, 다음은 12일부터 19일까지 김수환 추기경의 대담내용 전반을 간추린 것이다.

■5월 12일 (천주교와 개신교)

천주교와 개신교가 같은 하느님, 같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신앙고백 하면서도 서로 갈라져있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그 동안 성경공동번역, 사회운동차원에서의 협력, 예를 들어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와 개신교인권위원회와의 협력 등이 있어왔다.

그러나 일치는 여전히 우리의 큰 숙제이며 상호노력을 더 기울여야할 과제이다.

교회일치운동은 지금보다 오히려 20여 년 전이 더 활발했다. 지금은 점점 상호 교류가 적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그 열기가 수그러들었다. 그 이유는 자기만족 때문이다. 신자들의 증가와 자기 일에 바쁘기 때문에 만남이 소홀해지고 이해가 부족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선교분야, 곧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만남은 잘 이뤄지고 있다. 이는「3ㆍ1명동사건」등에서 잘 보여 진다.

■5월 13일(교회와 사회)

한국 천주교는 재작년 2백주년을 맞아 사목회의를 가지면서 자기반성과 선교3세기를 향한 복음화를 논의했다. 그때 주변을 복음화 시키면서 참된 복음화를 위해 복음을 증거 해야 하고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렇게 나가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나라의 정치ㆍ사회문제를 돌이켜 볼 때 우리가 진정 충실히 살아왔다면 과연 이 정도로 어지럽게 됐겠는가 하는 자기반성과 뉘우침이 있어야 한다. 교회가 소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속화되고 있어 이런 문제들이 더 어지럽혀지지 않는지도 생각해야한다.

교회는 아무리 시대가 어렵고 시련이 올지라도 인간존엄성, 기본권, 사회정의구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곧 고통 받는 이웃을 도우는 길이며 형제를 돕는 길이다.

■5월 14일(학생ㆍ젊은이)

젊은이들. 이른바「운동권학생」이라든지 과격학생들이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가를 생각해야한다. 왜 그들이 그와 같은 과격한 주장을 하게 됐는 지에서부터 문제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그 동안 정치가 민주화가 됐다면. 또한 경제ㆍ사회 여러 면에서 진정 사회정의가 입각해 있다면 그런 주장이 나왔겠는가.

정치의 비민주성ㆍ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에서 과격투쟁이 발생한다. 농민들의 생활이 날로 어려워져가고 있고 노동자들이 너무나 큰 고통에 처해 있으며 도시빈민들 또한 그렇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현재의 정치ㆍ경제구조가 그들을 착취하고 있으며 그 구조가 그대로 존속하는 한 농민ㆍ노동자ㆍ빈민들은 인간적인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세력들이 척결돼야 그들이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리는 있다. 그러나 과연 그 혁명이 학생들의 원대로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냐, 그렇지는 않다. 우선 그 원인은 우리 기성세대에게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요구하는 혁명을 위해서는 너무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 그 혁명을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하고 결국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순 없다. 그들을 용공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참으로 정치를 민주화하고 경제의 부조리를 제거해야하며 정의를 실현해야한다. 그럼으로써 농민ㆍ노동자ㆍ빈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줘야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근본 목적이며 무엇보다 우선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지금 여러분제가 얼키고 설키고 있는 것은 정치의 비민주화 때문이다.

모든 도시미화도 올림픽 스타디움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것보다 서민ㆍ빈민을 위해 정책이 더 필요하다.

현실이 이러니 과격학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은 폭력이 아닌 평화 속 민주화를 원하고 있다. 정부에서 주도권을 잡고 아무 단서 없이 완전히 자기를 비우는 자세로 나가면 걱정할 것이 없다.

오늘의 학생문제를 볼 때 학생들이 과격적인 행동을 하는데 이해가 간다. 그들은 행동으로 현실을 고발하고 있으며 의미는 상당히 크다. 이를 계기로 우리-기성세대. 정치지도 등-가 자성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그들의 주장을 관철하기위해 계속 충돌하면 희생이 커지며 국가도 흔들릴 위험이 있다.

학생들이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돌맹이와 각목 화염병을 버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가슴하나로 민주화를 외치기를 바란다. 그것이 더욱 호소력 있고 아름답게 와 닿을 것이다.

■5월 15일(언론)

또한 언론은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한다. 공정한 보도로 국민 앞에서 신뢰를 회복해야하며 현정부고위층에서도 민주화ㆍ민중화를 위해 무엇이 급선무인가를 파악. 반드시 진실보도를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그것이 개헌보다 더 급하고 중요하다.

인간의 자유ㆍ종교자유를 언론자유와 떼놓고 볼 수 없으며 인간전체 발전을 위해 언론의 자유는 상당히 중요하가, 기독교방송도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정성된 방송으로 뉴스ㆍ해설 등을 보도해야한다.

언론의 자유는 방송에도 주어져야하고 KBS등이 공영방송의 역할을 체대로 해 낼 때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현재는 KBS를 통해 정부가 점점 신뢰를 잃어 가고 있는데 공정보도로 모든 이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5월 16일 (교회의 현실참여)

교회의 사회참여는 절대 폭력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피를 흘리고 맞더라도 비폭력적으로 예수의 길을 따라야한다.

개인적으로는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만 교회 전체로 볼 때는 악법이라도 지키며 운동을 전개해야한다. 이렇게 해야 교회가 정당한 주장을 할 수 있다.

민약(아주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것이지만)교회에서 힘을 써야한다면 심사숙고한 후 신중하게 행동해야한다. 얼마 전에 교황청에서 발표한 훈령 속에서도 폭력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운동의 성패여부는 하느님께 맡겨야 하며 실패했더라도 양심에 따라 행했다면 잘한 것이다.

교회는 이 시대에서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야한다. 자기혁신을 통해야만 비로소 교회는 사회 속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학생들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체험하고 이를 자신들의 고통으로 나누고 있다. 그들 나름대로의 혁명이론까지 나온듯하다. 우리도 가난한자와 함께 울고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돼야한다.

■5월 19일(가톨릭의 국가관)

교회는 과거시대에 따라 여러 의미에서 국가관이 바뀌었지만 현재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현대세계에서의 교회사목헌장」에서 국가관을 찾을 수 있다.

국가는 큰 의미에서 정치공동체이다. 정치공동체로써 성원이 되는 국민들이 서로 존중하고 돕고 함께 발전해야한다.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목적을 공동선 추구에 둬야하지만 공동선이 꼭 국익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공동체의 모든 성원들의 인간존엄성이 존중되고 모든 인간이 의식주ㆍ교육 및 기타 사회생활에 피리요한 것이 보장되고 언론ㆍ집회ㆍ신앙의 자유를 통해 참다운 인간으로 발전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선 때문에 개인이 침해 유린 될 때는 이미 그것은 공동선이 될 수 없다.

국민들은 국가로 하여금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권층은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권위를 가졌을 때 정당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정당치 못할 때는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에게 권리를 돌려줘야한다.

우리는 교회와 국가 간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국가전체가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 모두가 원하는 민주화를 이룩하기를 원한다.

정부ㆍ국민이 힘을 합쳐 민주화를 이룩. 세계 속에 빛나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은 충정에서이다.

위정자ㆍ정부 관리들이 결단을내려 마음을 비우고, 열어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고 민주화를 주선한다면 그 영광은 나라 뿐 아니라 대통령ㆍ민정당ㆍ공무원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