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월남 남민촌에 사는 신학생 풍씨 “신부 되고파 탈출했어요”

입력일 2019-08-28 15:41:06 수정일 2019-08-28 15:41:06 발행일 1988-06-26 제 161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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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서품되는 신부들의 수를 극히 제한하는 당국의 종교제한정책의 영향으로 부제서품의 가능성이 희박해져 사제서품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탈출했습니다』

월남남부「칸토」에서 신학수업을 마치고 부제품을 받기위해 대기하던 중 당국으로부터 서품허락을 받지 못해 지난 85년 월남을 탈출, 그해 11월 30일 부산에 도착한 구엔 딘 풍씨(44)는 월남 공산치하 가톨릭교회의 박해상황을 자신의 예를 들어 단적으로 설명했다.

풍씨에 의하면 현재 월남에는 2천여명의 신부가 있으며 이들은 주일에만 대도시 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사이공, 하노이, 후이대교구를 포함한25개교구가 있으며 1명의추기경과 3명의 대주교, 그리고 40여명의 주교(보좌주교 포함)가 있다고 한다.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성당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 풍씨는 현재 5백여명의 신부들이 반혁명 죄로 감옥에 있으며 그 대표적인 성직자는 75년 공산화 이래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있는 후엔 반투언 주교라고 밝혔다.

또 풍씨는 신부들을 주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노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주일미사 때 대도시성당은 문밖까지 꽉 들어찬다고 말했다. 정부는 천주교신자임이 밝혀지면 공직이나 사회단체의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없도록 조치하고 있으나 신자들은 오히려 더 열심히 믿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가정집에서 여럿이 모여 비밀리 기도하는 사례가 대단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신자수도 공산화이전보다 크게 줄어들지 않고 3백 50만명 가량으로 추산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신부나 신자들이 드러내놓고 전교활동을 한다거나 조금이라도 반체제적인 발언을 하면 가차 없이 투옥시킨다고 한다.

풍씨는『공산화초기에는 혹심한 종교탄압을 했으나 지금은 회유정책을 병행하며 탄압을 다소 완화하는 경향이 있다』며『그러나 북베트남은 여전히 강력한 억압정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풍씨는 여건이 허락되는 대로 캐나다로 가서 나머지학업을 마치고 사제서품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