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소현세자와 아담 샬 신부] 1. 중국선교 위해 수학ㆍ과학 연구에 심혈

서양자 수녀ㆍ한국순교복자수녀회
입력일 2019-06-05 15:14:52 수정일 2019-06-05 15:14:52 발행일 1990-06-10 제 1708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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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선교사 보고서에 감동…선교지원
1611년 예수회 입회, 1617년 사제서품
병자호란(1636년)으로 청나라에 불모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8년동안(1644~51)의 귀양살이 중 북경에서 독일인 예수회 아담 샬 신부를 알게돼 서로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이들의 만남과 친분은 한국교회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교회사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에 본보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서양자 수녀의 특별기고「소현세자와 아담 샬 신부」를 연재, 교회사적 맥락에서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註>

아담 샬 신부

아담 샬(湯若望) 신부는 독일 쾰른에서 부친 요한과 모친 마리아 사이에 3형제 중 막내로 1592년 5월 2일 출생하였다. 샬 신부의 선조는 로마계인으로서 12세기경에 독일로 이주해왔으며 평민에 속했으나 후에 귀족으로 봉작되었다. 샬 신부의 청년시대 사료가 대단히 희소하며 그의 가족에 관한 문헌들도 실몰(失沒)되었다. 샬 신부는 트리코로나툼 중학교를 다녔으며 이 학교의 교사들 중에는 예수회 회원이 많이 있었으므로 어려서부터 예수회 회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샬 신부는 게르마니쿰대학 윤리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611년 10월 21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샬 신부는 수련기 때 간호사일도 하였으며 주로 부상병을 돌보았다. 샬 신부는 1616년 동인도 혹은 중국선교를 지원하였다. 샬 신부가 이렇게 큰 뜻을 품게된 것은 1590년이래 마태오 리치 신부 등 선교사들이 유럽에 보낸 보고서를 읽고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중국에서는 수학과 천문학 등의 과학이 가치가 높았으며 샬 신부가 수학과 과학을 깊이 연구한 것으로 보아 일찍이 중국선교에 뜻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1610년 니콜라우스 트리고우(金尼格) 신부가 33세에 중국에 왔다. 트리고우 신부는 열성적이고 두뇌가 명민(明敏)하고 웅변술이 좋고 저작을 많이 하였다. 트리고우 신부가 자금성에 들어가 황제 배례(拜禮)를 하였으나 그것은 리치 신부와 판토자 신부때처럼 빈 보좌(寶座)에 절한 것이며 그래도 중국에서는 최고 영예에 속했던 것이다.

당시 중국에는 5개의 선교구로 되어 있었으며 총 책임자는 니콜로 롱고바르디 신부였다. 롱고바르디 신부는 로마 교황청과 예수회 본부에 신부 한명을 파견하여 중국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하고 중요한 문제 해결을 위하여 도움을 청할 계획을 사우고 있는 도중에 트리고우 신부가 중국에 왔다.

롱고바르디 신부는 트리고우 신부를 최고 적임자로 보고 그를 1613년 로마에 파견하였다.

트리고우 신부가 1년간 로마교황청과 잘 교섭한 결과 교황 바오로 5세가 1615년 6월 27일 칙서를 내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기도문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하게하고 예식도 중국어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선교사들도 중국인들이 쓴 책건(責巾)을 쓸 수 있게 허락을 내렸을뿐 만아니라 귀중한 서적을 중국교회에 기증하였다.

트리고우 신부는 로마 제7차 총회에도 참석하였다. 트리고우 신부는 전국에서 모인 예수회 대표들에게 중국교회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여 중국교회에 중요성을 인식시켜 마침내 중국교회가 일본교구로부터 분리되는데 허락을 얻게 되었다.

트리고우 신부는 로마에서 라틴어로 책일 저술하여 1615년 독일 아우그스부르그에서 출판하였으며 일본년보와 중국년보 그리고 리치 신부가 중국천주교도 입사를 이태리어로 쓴 것을 라틴어로 번역 출판하였다.

이 책들은 이미 중국에서 대부분 번역한 것이며 일부분만 로마에서 번역하였다. 샬 신부가 예수회 총장에게 중국선교를 지원하기 전에 트리고우 신부와 의논하고 최후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샬 신부는 상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게르마니쿰대학을 졸업했으며 161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샬 신부는 출국 직전에 독일로 돌아가 고향을 방문하고 포르투갈로 가서 포르투갈어를 배웠다.

동방으로 떠남

트리고우 신부는 유럽 각국을 다니며 중국에 가져 갈 물건을 기증 받았다. 트리고우 신부는 1618년 4월 16일 리스본에서 인도로 떠나는 예수호에 승선하였는데 그 배의 승객은 모두 6백36명이었으며 중국으로 선교하러 가는 선교사가 22명이 탑승하였다. 그 중에는 샬 신부와 떼렌즈 신부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무풍지대를 상당히 두려워하여 무풍지대를 사기층(死氣層)이라 불렀다.

이 사기층에 이르면 날씨가 더워 식수와 음식물이 전부 부폐되고 호흡하기도 곤란하게 된다.

승객들은 전염병에 걸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배에 사람이 많으므로 즉시 여러 사람에게 감염되고 사망하면 그대로 바다에 던져 수장(水葬)을 지냈던 것이다.

서양자 수녀ㆍ한국순교복자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