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화의 최대과제,성직자 중심주의 극복 오경환 신부 - 공의회전에 비해 본당·교구운영 개방돼 통일지향의 사목방향 절실히 필요한 때 변진흥실장 함세웅 신부 - 한국교회의 현실개혁·투신적 자세요청 이제 교회밖으로 눈 돌릴때 능동적인 봉사 자세도 필요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 정신은 무엇인가? 또 그것이 한국교회에 안겨준 영향과 과제는 무엇인가? 공의회의 가르침은 과연 한국교회에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수용됐는가? 가톨릭 정의평화연구소 (총재·윤공희 대주교)가 주최한 제2차 바티깐공의회 개막30주년 기념 심포지엄은 한국교회로선 공개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진단해 본 최초의 자리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9월25일 「공의회 개최배경과 성격」을 주제로 한 두봉 주교의 강연에 이어 「공의회 정신에 비추어본 한국천주교회의 토착화 현황」을 주제로 한 이제민 신부 (광주 가톨릭대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다음은 이제민 신부의 강연내용과 토론자들의 토론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9월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꼬 회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이제민 신부 (광주가톨릭대 교수)는 「공의회정신에 비추어 본 한국천주교회의 토착화 현황」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개방과 아르죠나멘트(쇄신)를 표방한 제2차 바티깐공의회는 교회의 쇄신, 새로운 교회일치운동, 변화한 세계 이해 등 세 영역을 추구하나, 이 세 영역에서 내면적 일치를 이루는 것은 봉사와 대화』라고 말하고 이러한 정신에 비추어 볼 때 한국교회는 아직도 성직자 중심주의, 집단 이기주의, 교구 중심주의, 권위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신부는 『한국교회는 그 구성원을 볼 때 충분히 봉사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으나 이 봉사는 대개가 지시된 봉사일 경우가 많다』고 밝히고 『성직자들도 교회에 몸 바쳤다는 이유로 이미 봉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평신도들은 성직자에게 봉사하는 것을 교회에 대한 봉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성직자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신자들이 성직자들에게 쏟는 정성을 인류와 세상을 향하여 쏟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토착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신부는 봉사가 교회 안에서만 제한되어 행해지는 것은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집단이기주의에 한 원인이 있다면서『토착화된 한국교회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얼마만큼 교회 밖 인간들에게 돌릴 수 있는가, 어떻게 교회안팎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번뇌에 헌신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봉사와 사목은 참된 대화를 전제로 한다』고 강조한 이신부는 『위로 올라갈수록 대화는 거부되고 대신 「권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 한 인상을 받는 것은 어제 오늘의 느낌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잘못된 영성이 지금 주변에서 수없이 체험되는 굴절된 신앙(시한부종말론·사적계시)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고 반문한 이신부는 그간 한국교회가 영성과 열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영성대신 세속과 동떨어진 열심만을 부추긴 탓에 자칫 교회가 윤리 도덕단체로 전락할 위험마저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민 신부는 결론적으로 『교회가 현실에 대해서 방어적이며 기껏 윤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운동만이 연일 강조되고 성직자 중심주의, 교구 중심주의 권위주의, 집단이기주의, 로마예속(지향)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공의회는 아직 우리에게 미래』라면서 『부르죠아적 교회를 탈피하고 개방과 현재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래서 가톨릭을 「무틀」 내지 「탈들」로 인식하게 될 때 그곳에서 이 민족에 토착화된 교회를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약정 토론
이날 이제민 신부의 주제발표에 이어 오경환 신부(인천 간석동본당주임)와 함세웅 신부(가톨릭대교수) 변진흥씨(북한 선교위원회 기획실장)가 토론에 나섰다.
▲오경환 신부는 『이제민 신부의 발표내용이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주고있으며 한국교회의 현실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애정을 갖고 매우 우려하는 좋은 논문』이라면서 그러나 주제취급 범위의 한계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부정적인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오신부에 의하면 현재의 한국교회가 공의회의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공의회 이전과 비교해 그 정신이 전혀 침투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공의회정신에 따라 한국교회가 변화된 점들을 전연 인정하지 않고 간단하게라도 지적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제민신부의 주장은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는 것.
오신부는 대화의 측면에서도 일부 본당에서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도 대부분의 본당에서 공의회이후 본당운영을 사제와 함께 상의하는 사목회 혹은 사목협의회가 조직되어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교구마다 사제평의회와 사제총회가 있어서 사제들도 전보다 훨씬 많이 교구운영에 참여한다면서 평신도-사제-주교간의 대화가 없고 지나치게 권위적이라는 이신부의 주장을 비판했다.
▲변진흥 실장은 이신부의 토착화에 대한 연구가 한국교회의 현실만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한국교회의 원형내지는 완성되어야할 조선교회, 즉 민족사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민족적 현실까지 확대되지 못한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개방에 기초를 둔 사목」에 대한 요한 23세의 예언적 관심이 공의회 개최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볼때 민족사에 대한 한국교회의 예언적 관심도 「개방에 기초를 둔 통일 사목」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통일 사목의 요체인 통일영성은 민족사회의 현실에 천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실장은 토착화된 한국교회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얼마만큼 교회 밖 인간들에게 돌릴 수 있는가에서 찾아질 것이라는 이신부의 지적에 동감하면서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분단으로 인해 빚어진 고통과 갈등의 해소를 위한 노력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갈라진 민족사회의 상처를 치유하여 구원의 공동체로 인도하는 통일사목적 노력에 쏟는 에너지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오늘의 한국교회가 공의회정신을 망각하고 집단이기주의에 깊이 빠져있다면 통일사목과 민족복음화라는 미래지향적 목표야말로 한국교회가 이를 극복하여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신천지일 것이라면서 한국교회가 민족사회의 현실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대화, 참된 봉사의 자세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함세웅 신부는 봉사와 대화라는 공의회정신의 원동력에 비춰볼 때 한국 교회 안에서 봉사는 단어로만 기억될 뿐 실제로는 성직자중심의 권위주의만이 우세하다고 비판했다.
『한국교회는 따라서 절름발이식 봉사가 존재한다. 큰 잠재력을 지닌 평신도들은 상명하달에만 길들여져 있고 수동적 실천에만 익숙해져 있다』는 지적이다.
참된 영성은 사회성과 현실을 존중한다고 할 때 연대적 자세, 현실 개혁적이며 투신적 자세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요청되는 참된 영성이라는 것.
함신부는 『봉사와 대화에 대한 이신부의 원리적 설명은 지극히 타당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많은 경우 불의한 이익을 취할 수밖에 없는 교회의 한계와 교회내의 재정구조의 공개, 교회내의 자금흐름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는 점 등이 지적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면서 『특히 열심과 영성을 혼동하고 있는 한국교회 신심운동의 문제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것은 일차적으로 사제와 주교들의 책임이며, 신앙의 무지, 나아가 결국 올바른 신관이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한국교회 자체의 솔직한 고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