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생각 (853) 예수님의 엄마 마리아 / 김동일 신부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
입력일 2013-12-24 05:58:00 수정일 2013-12-24 05:58:00 발행일 2014-01-01 제 2876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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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루카 2,16-21)
어떤 엄마가 현명한 엄마입니까? 아이가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주는 엄마. 아이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엄마. 아이가 좋아할만한 것을 눈앞에 놓고 아이가 그것을 잡고 할 수 있게 하는 적극적으로 교육하는 엄마. 아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엄마.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입니까? 모두 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는 좋은 태도입니다.

오늘 목동들이 만난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어떤 엄마였을까요? 첫 번째로 성모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하는 엄마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 잉태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루카 1,26-38)에서 천사의 인사말을 듣고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성모님은 뭐가 뭔지 몰랐습니다. 천사가 왜 나한테 나타났는지도 모르겠고, 나를 ‘은총이 가득한 이’라고 하는데, 무슨 은총이 가득한지도 몰랐습니다. ‘기뻐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왜 기뻐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겠지만 또 당장 이해가 되지 않지만 생각해 봅니다. 이게 뭐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어떤 일을 계획하시는가 보다. 이런 믿음으로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엄마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성모 마리아는 일어난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는(루카 2,51) 엄마였습니다. 열두 살 예수를 성전에서 찾고나서 엄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 아들 예수가 율법 교사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도 놀랍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슬기로움에도 놀랐습니다. 내 아이가 이렇게 똑똑했나! 내가 너무 아들 예수를 모르고 키웠나! 이렇게 영특한 아들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목동들이 천사에게서 듣고 마리아에게 전해준 이야기는 실로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내 아이가 이렇게 훌륭하다고! 어떻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엄마 마리아는 신중했습니다. 기뻐서 들뜨지 않고, 차분했습니다. 무엇이 아이를 돌보고 키울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자 모든 일을 마음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세 번째로 성모 마리아는 아들의 어려움(요한 19,25)에 함께 하는 엄마였습니다.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그 자리를 엄마는 지켰습니다. 서른이 넘어 아들이 세상으로 나갔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믿기 어려워 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내쳐질 때 엄마 마리아는 그 곁을 지켜줬습니다. 아들이 겪는 어려움을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그래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화려하게 입성할 때 그 곁에 마리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골고타를 올라가는 고통과 수난의 힘겨움에는 함께 있었습니다. 아들이 무덤에 묻힐 때 엄마 마리아는 지켜보고 있었습니다(마르코 15,47).

예수님의 엄마 성모 마리아는 이런 엄마였습니다. 우리의 엄마들도 성모님의 모습을 따라 아이들을 키워 오셨고, 지금도 돌보고 있습니다. 처음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엄마 자신의 변화들, 신체적인 변화와 심적인, 영적인 변화를 느꼈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보이는 많은 놀라운 일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담았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더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아이가 세상을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 그 곁에서 힘이 되고자 밤을 지새우며 지켜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부활을 알리십니다. 복음서에 나오지 않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일 먼저 찾아가 뵙고 싶은 사람은 엄마 마리아였을 것입니다. 제일 슬퍼하고 위로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엄마 마리아이지 않았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과 엄마 마리아의 상봉 장면을 어떻게 그려보시겠습니까? 죽었다 살아 돌아온 아들을 마주한 엄마. 아들의 일생을 온전히 함께 했던 엄마.

우리도 힘들 때 찾아가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엄마. 힘드니까 도와달라고 떼 쓸 수 있는 엄마. 기쁜 일을 안고 찾아가 함께 기뻐해 주기를 바라는 엄마.

우리에게도 소중하고 아름답고 현명한 좋은 엄마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엄마 성모 마리아와 같은 엄마가 있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건강하셔요.”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동일 신부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