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가 교황 프란치스코 선출로 수도회 설립 4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교황을 배출했다.
예수회는 1534년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그의 ‘영신수련’으로 단련 받은 6명의 동료들로부터 기원, 6년 후 교황 바오로 3세(1534~1549)의 회칙 ‘레지미니 밀리탄티스 에클레시애’에 의해 정식으로 설립됐다.
대격변기이자 종교개혁의 시대에 시작된 예수회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려는 열망’으로 자신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려고 했고, 복음적 권고를 따라 교회에 봉사해 왔다.
거룩한 생활과 뛰어난 학식을 갖춘 예수회는 특히 지적·영적으로 교회 쇄신에 기여했다. 예수회가 반종교 개혁을 위해 설립된 것은 아니었지만, 독일 남부 지역과 프랑스, 중부 유럽 및 동유럽 지역에 종교 개혁 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덕분에 예수회는 짧은 시간 동안 큰 명성을 얻어 1556년 938명이던 회원이 1565년 3500명, 1626년 1만5544명, 1710년 1만998명, 1749년 2만2589명으로 점차 늘어났다.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뿌리를 둔 예수회는 활동이 가장 왕성할 때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급격한 성장과 높은 명성, 교육 및 학문적인 지위 상승으로 인해 교회 내외에서 갈등이 생겼다. 18세기 말에는 계몽주의 철학자와 얀센주의자, 갈리아주의 등 반(反) 교회적 움직임이 확산되며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강제 추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1814년 교황 비오 7세가 교서를 발표함에 따라 예수회가 복구됐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회원이 증가했다.
시대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를 관상하며 영감을 받아 사도적 활동을 펼치는 예수회 회원은 이냐시오와 같이 ‘예수의 벗’으로 부름을 받았음을 인식한다. 또한 ‘주님 안의 벗들’인 동료들과 더불어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신앙의 봉사와 정의 구현에 헌신하고 있다.
예수회의 사도직은 교육 분야서 두드러진다. 해산된 기간에도 러시아 등지에서 13개의 예수회 학교가 존속했다. 현재는 세계 100여 개국 226개의 단과대학과 종합대학을 설립했으며, 4000여 개의 중·고교, 기타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교회와의 인연은 1955년 시작됐다. 고등교육 기관을 설립해달라는 한국교회의 요청에 따라 교황 비오 12세(1939~1958)가 예수회에 이를 맡겼다. 그 결과 서강대가 1960년 개교할 수 있었다. 또한 예수회는 1969년 광주대교구로 이양하기 전까지 광주가톨릭대를 설립, 운영했다. 현재 한국관구에서는 170여 명의 회원들이 교육, 사회, 영성, 해외선교 등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