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칼기 희생자 합동위령제 중, 김 추기경 기도 전문

입력일 2011-05-27 15:13:54 수정일 2011-05-27 15:13:54 발행일 1983-09-18 제 1372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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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로 마음돌리게 하소서”
“당신뜻 외면하고 사는 우리 모두의 죄값 대신 치른 그들 슬픔이기고 당신 빛속에 굳게 살게하소서"
소련에 의해 격추된 칼기의 승객 2백69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합동위령제가 지난 7일 오전 10시 서울운동장에서 유족과 추도객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다음은 이날 합동위령제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올린 기도의 전문이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오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우리의 흐느끼는 소리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지금 우리는 지난 목요일 새벽、사할린상공에서 비명에 간 2백69위의 영혼들을 위해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들의 최후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그들의 죽음이 너무나 비극적이기에 우리는 무슨 말로 그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왜 이들을 쏘는 그 잔인한 손을 잡아 멈추지 않으셨습니까? 이들을 왜 그 무도한 원수들의 손에 맡기셨습니까? 오늘의 세계가 당신을 외면하는 죄의 응보입니까? 입으로만 평화를 부르짖고 행실로는 온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생산에 광분하는 거짓에 대한 응징입니까? 그렇다면 그 당사자들을 문책하시지 않고 하필이면 이들을 택하셨습니까?

고요한 아침의 나라 서울의 새벽을 기다리며 잠든 그들을 택하셨습니까?

왜 어린 생명까지 앗아가는 것을 보고만 계셨습니까? 무고한 자의 피가 오늘의 세계의 양심을 일깨우고 세상의 죄를 사하는데 더 호소력이 있어서입니까.

주여、당신께 원망하고 넋두리를 펴는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졸지에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아내와 남편、부모 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의 비탄이 너무나 커서입니다. 우리의 미움 역시 너무나 괴롭고 슬퍼서 입니다.

야훼 하느님! 당신은 의로우시고 당신은 사랑 지극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이 이들을 비명에 몰아 넣으실 리 없습니다. 당신이 뜻하시는 것은 죽음이 아니고 생명입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것은 미움이 아니고 사랑이며 전쟁이 아니고 평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당신의 뜻을 외면하고 거스르며 살고 있습니다. 하옵기에 오늘의 이 비극、세상의 모든 재앙이 다 우리의 죄때문입니다. 인명을 경시하고 사람귀함을 망각한 이 시대의 죄때문입니다. 비명에 가신 분들은 오늘의 세계와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치른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의 죄를 지고 죽었습니다.

주여 우리의 이 뉘우치는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어 이 영혼들을 당신 품에 안으소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고 그들을 인도하시어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당신 생명의 나라、빛과 평화의 나라로 인도하소서!

또한 비통에 젖은 유가족들을 위로하소서、그분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사랑을 가득히 부어주소서、모두가 슬픔을 이기고 당신 빛 속에 보다 굳세게 살게 하소서、그리하여 이제부터는 온 세계가 당신의 뜻에 순응하여 공산주의 소련도 회개하고 우리 모두 당신께로 마음을 돌리게 하소서、우리 모두 당신의 뜻을 따라 인간의 존귀함을 깨닫고 인명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이 땅과 온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이룩하는 역군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