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가사 한국교회 음악적 유산이자 보배 그리스도문화 형성의 기초역 구전으로 명맥만 이어질 뿐 박해후 애창돼…복음의 메시지 전파 역할 4ㆍ4조 형식의 토속적 민요풍 대중성가
교회사연구소 (소장ㆍ최석우 신부) 제43회 월례발표회에서 이화여대 음대 홍민자 교수는 「천주가사의 교회음악적 의의」란 연구 발표를 통해 한국인의 심성에서 우러나온 4ㆍ4조의 토속적 민요풍의 시와 노래가 조화된 천주가사에 대한 크나큰 관심과 연구를 요청했다. 다음 글은 홍 교수의 연구 발표를 간추린 것이다.
■典禮와 聖歌
우리의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며 일치를 초래하며 거룩한 의식을 더 성대하게 감싸주면서 전례 행위와 밀접히 결합하면 할수록 더욱 거룩해지는 음악을 우리는 성음악이라 부른다. (전례 현장 6장에서)
성가 없는 전례 생활 이란 생각 할 수도 없다. 하느님의 영광과 신도들의 성화를 지향하는 성가는 전례의 본질적인 요소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가 있는 곳에 성가는 항상 같이 존재하였으며 우리나라 교회역시 예외 일 수는 없었다.
初期敎會의 聖歌
1, 교회 창설 직 후부터 전례가 있었다. 이 전례는 假聖職制度를 형성했던 신도들에 의해서 시작되고 있다. 가성직 제도의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던 신도들은 주로 지식인 계층에 속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유교적 풍토속에서 禮와 함께 樂도 존중해왔다. 그러므로 이들의 전례에 樂이 도입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며 우리는 그 흔적의 하나를 이 벽이 지었다고 전해지는「天主敬歌」에서 찾을 수 있다. (천주 공경가의 작자에 관해서는 더 연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벽과 같은 인물이 가사를 지었다는 전승은 초기 교회의 전례에 음악이 들어갈 수 있었던 가능성을 반영해주고 있다.)
2, 1795년 周文謨 신부 입국 이후 교회의 전례에 음악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더욱 높다. 물론 당시 박해가 진행 되던 상황에서 소리 높여 성가를 부르기는 어려웠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성가를 전례에 도입 했을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3, 周文謨 신부 및「빠리」외방전교회 선교사의 입국 이후 한국교회의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은 더욱 넓어졌을 것으로 생각 된다.
4, 선교사들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마카오」에 金大建등이 유학하던 중 그들의 음악적 재질에 관한 언급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5, 이상은 박해시대의 典禮音樂이 있었을 가능성을 살펴본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에 있어서 전례음악과 함께 중요한 성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것은 天主歌辭이다. 이 천주가사는 이조 후기의 대중 가사인 4.4調 형식으로 된 천주교 초기교회의 신앙노래를 통틀어 말한다. 멜로디는 한국인의 심성에서 우러나온 토속적인 민요풍이며 시와 노래가 잘 조화된 서가이다. 또한 가사는 한글로 되어 모든 대중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대중 성가이다. 그 내용은 초기에는 호교 의식의 고취와 교화를 목적으로한 신앙의 교훈을 노래한 것이며 崔良業 신부(1821~1861)때에는 숨어사는 교우들을 사목할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이는 성음악을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불리우던 천주 가사는 19세기 말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점 사라져 지금은 70~80세의 구교우들의 구전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충청도 예산 지방에서 채집된 천주 공경가를 살펴보기로 하자(金眞召 신부제공)
天主歌辭의 가락
천주공경가는 4.4조 형식으로 1음모로 계산하여 33구의 극히 짧은 가사이다. 이는 천주가사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는 사향가(思鄕歌)의 가락과도 거의 일치된다. 사향가 천주 공경가와 같은 천주가사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민요의 영향을 많이 보였다. 민요중 특히 동부지방의 메아리조의 영향을 받았다.
2, 멜로디와 가사가 잘 어울리는 성악곡이다. 무반주이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신앙 음악이다.
3, 기본음악에서 항상 단3도 위로, 완전4도 아래로 내려가면서 읊어지는 형식이다.
4, 불교의 염불과도 흡사하나 염불에서는 중간 경과음이 있는 반면 천주가사의 곡조는 경과음이 없이 계속된다.
5, 음악적으로 볼때 민요와 염불의 영향을 일부 받기는 하였으나 새롭게 전례된 그리스도교적 문화안에서 민요나 염불과는 달리 그 곡조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結論및 問題提起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 가사는 짧고 단순하면서도 낭송조로 되어 있으며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여 우리나라 문화안에 그리스도의 문화를 형성하는 기초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교회의 중요한 음악적 유산이며 보배라 할 수 있다. 현재 이러한 천주가사의 자료들의 수집은 구전되는 가사를 녹음등의 방법으로 채집되고 있으나 나중 단계에 필요한 자료들의 수집 및 정리도 요망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구전가사의 채집은 현구전자 연령이 70~80세이므로 매우 긴급한 사항이라 말할수 있다.
즉, 천주가사는 한국인 심성에 맞는 훌륭한 성가곡이다. 박해시대 신도들의 고동체적 체험을 강화 시켜 주었다.
한국교회 신도들의 2백여년을 내려오면서 부르던 성가로서 한국 가톨릭 교회에 중요한 음악적 유산이며 보배이다.
천주가사는 박해의 풍상을 겪은 이 후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신도들에게도 애창되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받아 들여 1924년 한국천주교회가 처음으로 간행한「조선어 성가집」에는 천주가사의 가사가 12편이나 수록되어 있었다. 음악사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천주가사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