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교황청 중재로 해결의 실마리 보이는 칠레ㆍ아르헨티나 영유권 분쟁

입력일 2011-04-15 16:50:00 수정일 2011-04-15 16:50:00 발행일 1979-02-25 제 1143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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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특사 파견 예비협정 체결 성공
3개 섬 영유권싸고 충돌직전 위기에
칠레 소유 인정하자 아르헨티나 반발
남미 남단에 위치한「비글」해협의 3개 섬을 둘러싼 칠레와 아르헨티나간의 영유권 분쟁이 교황청의 중재로 해결될 전망이 짙어가고 있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바로 지난 8일 양국 외상들이 제3국인 우르과이의「몬테비데오」에서 교황청의 특사가 임석한 가운데 2개의 예비 협정을 체결한 사실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향한 서곡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2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양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협상 중재자로 직접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더 한층 그 전망을 밝게 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미 본보를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양국 정부가 체결한 2개의 예비협정은 쌍방이 1977년 평상시대로 공동수역에서 군대를 감축시킬 것과 분쟁해결을 위해 교황의 중재를 공식 요청키로 합의한 것이 골자로 돼있다.

「비글」해협의「픽론」「누에바」「렌녹스」등 3개 섬의 영유권분쟁은 19세기부터 계속돼온 것이지만 그동안 잠잠해 오다 지난해 영국의 감독 하에 있는 한 국제위원회가 이들 섬의 소유권을 칠레에 부여키로 한 결정을 아르헨티나가 거부함으로써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국제위원회가 3개 섬의 소유권을 칠레 측에 인정한 주 동기는 이들 섬들이 영사적으로 볼 때 칠레와 더욱 관련이 깊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들 3개 섬을 둘러싼 분쟁은 법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들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여하튼 이들 섬들이 양국정부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중대하다. 그것은 이 3개 섬을 어느 쪽이 소유하느냐에 따라 이를 발판으로 남대서양과 남극 근해 및 남극대륙에서의 영토권 주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아르헨티나 측 주장을 들어보면 칠레는 전통적으로 태평양상의 해안선만을 소유키로 합의했으며 아르헨티나는 대서양 해안선만 소유키로 합의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칠레가 3개 섬을 소유하게 되면 아르헨티나에 소유권이 있는 대서양 해안선을 칠레에 넘겨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칠레는 아르헨티나가 자기네 소유로 주장하고 있는 영해를 침범、자기네 영해를 확장시키려 노력하게 될 것이라는 게 아르헨티나의 두려움이다.

한편 칠레가 최근에 소유권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 것은 이들 섬의 주민 대다수가 칠레인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칠레측은 영해 소유 문제를 기꺼이 협상하겠으며 또 분쟁지역에서의 수산자원 공동개발에 기꺼이 합의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이 같은 양국의 영유권분쟁에 교황청이 개입하게 된 것은 분쟁해결을 위한 양국정부의 직접적인 노력이 실패로 끝난 직후 분쟁지역과「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한 2천5백마일에 걸친 공동 국경지역에 양측이 군대를 증강、전운(戰雲)이 감돌던 지난해 12월 초의 일이었다. 두 나라의 사태진전이 심상치 않음을 주시해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2월 12일 양국정부 수뇌에 개별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했다.

그 후 교황의 호소를 받아들인 이들 두 나라 대통령은 급기야 분쟁해결에 교황청의 중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으며 결국 12월 22일 교황은 양국정부의 중재요청을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그 다음날 교황은 바티깐 시국의 가장 노련한 외교관이며 남미문제 전문가인 안토니오 사모레 추기경을 교황특사로 임명했다.

사모레 추기경은 12월 26일부터 1월 8일까지 두 주 동안 칠레와 아르헨티나 양국을 왕복하면서 협상을 벌인 끝에 마침내 양국 외상이「몬테비데오」에서 2개의 예비협정을 체결토록 하는데 성공했다. 뭣보다 이번에 교황청이 양국분쟁의 중재역을 담당케 된 이면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이 배경에 놓여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그 하나는 양국정부가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진정한 평화 정착 노력을 높이 평가한 점이며、또 다른 하나는 중남미 대륙에서의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사실이다.

아마 두 나라는 자국이익을 위해서 강대국의 지원이나 또 통상적인 UN의 중재를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교황이 아무리 평화적 해결을 요청했다 하더라도 거부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모두 교황청의 중재를 요청한 사실은 한마디로 대화와 상호이해의 바탕위에서 평화적인 해결을 계속 우구해온 교회의 진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다음으로는 칠레ㆍ아르헨티나 양국 국민의 90%이상이 가톨릭신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두 나라가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교황청의 중재가 해결의 열쇠로 등장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보여 진다.

이제 앞으로 남은 것은 쌍방이 언제 어느 장소에서 만나 어떤 선에서 해결점을 찾느냐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전해진 바로는「로마」가 협상장소로 유력시 되고 있으나 언제 회담을 갖게 될지는 확실치 않으며 타협선 역시 미지수로 남아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모레 경도 밝혔듯이 어떠한 분쟁도 쌍방 모두 다소의 손해나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양국분쟁의 해결은 교황의 중재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도 두 나라가 과연 어떠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게 된다.

만일 이번에 양국 분쟁의 중재자로 나선 교황청이 중재에 성공하게 될 경우 그것은 거의 한 세기 만에 처음으로 국제분쟁을 교황청이 해결하는데 성공을 거두게 되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교황청이 국제분쟁을 해결한 것은 1885년 당시 교황 레오 13세가 스페인과 독일 제국간의「카롤라인」군도를 둘러싼 분쟁을 해결한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라띤 아메리카 대륙에서 교황청이 분쟁의 중재역을 맡았던 것은 1494년 교황 알렉산더 6세가 남부 아메리카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식민지 분할을 놓고 출동했을 때 그 분할 선을 경선60도로 설정 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1928년부터 1935년에 걸친 볼리비아와 파라과이간의 전쟁은 교황청이 중재자로 요청을 받고 참여하긴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따라서 교황청의 이번중재는 여러 면에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