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일로 잘 아는 분 가운데,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좌우명을 가진 분이 계셨다.개신교 신자인데다 믿음이 강한 분이어서 별 저항감을 들지 않앗으나, 내심으론 「하필 그런 좌우명을…」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좌우명이라면 그래도 성실(誠實)이니, 인내(忍耐)니, 극기(克己)니 하는 등의 진취적 기상이 넘치는 문구가 보다 격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요즈음, 자질구레한 일들로 생활의 리듬을 잃어가면서,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내 가슴을 비수처럼 찌르고 있다.
솔직히 그간 나에게는 이 귀중한 말씀이 성경의 한 구절이라는 인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범사는 곧 창조주의 은총이므로, 신자라면 매사에 감사하며 사는 게 도리라는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범사보다는 범상하지 않은 일에 더 많이 감사하고, 창조주보다는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감사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인 짓인가?
머리가 가려울 때 손을 들어 머리를 긁는 일은 범사이다. 가족끼리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는 일 또한 범사일 것이고, 탈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도 범사일 터이다. 그런 일들은 너무나 당연해서 어떤 생각이 개입할 여지도 없는 일들이다. 그렇지만 뜻밖에 손을 다친다면 어떻게 되는가?
가족 가운데 어느 누구 하나라도 탈이 붙는다면 어떻게 된 것이며, 횡단보도를 건너다 무슨 변이라도 당한다면 또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는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닌게 된다.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고, 평소의 범사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후회 속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다-깨달음을 주신 주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