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TV 글로벌 토크쇼에 출연하면서 이른바 스타덤에 올랐다. 한국에서 겪는 다양한 체험과 의견들은 그녀의 재치 있고 솔직담백한 입담으로 더욱 생기를 얻었다. 말투가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 씨와 닮아있어 화제몰이가 되기도 했다.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Cristina Confalonieri·이탈리아·29) 씨는 여느 유명 연예인 이상으로 큰 인기와 바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주한 외국인이다.
공무원, 대학교수, 방송인, 에세이스트 등 다양한 역할로 한국사회를 종횡무진 누빈다. 지난달 서울 역삼글로벌빌리지 센터장에 다시 뽑히면서 더욱 바쁘게 활동하는 크리스티나 씨를 만나봤다. 일취월장한 한국어 실력으로 ‘긍정의 마인드’를 술술 풀어내는 모습이었다.
서울 역삼글로벌빌리지 센터장, 가톨릭대 법학대학 겸임교수, 서울대 이탈리아어 강사 등 현재 맡고 있는 직함만도 굵직굵직하다. 매주 지상파 TV 토크쇼 출연과 서울 강남구와 경기도, 법무부 서울출입국사무소, 한국다문화재단 홍보대사로서의 활동도 분주하다. TV 어학과 요리 프로그램 진행을 비롯해 책 출판 등의 작업도 부지런히 이어왔다.
“저 닭띠예요. 매우 활달한 성격이지요.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밖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단다. 늘 부지런하게 무언가를 배우고 또 가르치고 또 체험하는 것을 즐겼다.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기억이 없다. 항상 호기심에 가득 차 재미있게 일하기 때문이다. 특히 독실한 가톨릭신앙 안에서 성장해 항상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면부터 먼저 보는 특유의 성격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데 한몫했다.
그래도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내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걱정했었다. 지금의 남편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낯선 한국 땅에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국제법을 전공한 그녀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에서 근무했다. 결혼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한국 남자와 결혼했냐”였다. 그녀의 남편은 성악가 김현준 씨다.
“한국 남자여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국 남자였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세계 어디라도 상관없었어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이름과 서울이라는 수도 이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문화 마니아가 됐다.
한국에서 가장 좋아한 것은 한복. 보기만 해도 신이 난다. 명절 때마다 한복을 차려입고 고궁을 방문하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사물놀이는 배울수록 재미있다. 악기를 잘 못 다뤄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한국화도 그녀의 눈엔 너무나 근사한 장르다. 화끈한 성격만큼 매운 음식도 잘 먹는다. 크리스티나 씨의 말을 빌리면 “제사음식은 너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이다.
특히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할 때면 “한국은 매우 현대적인 그러나 매우 전통적인 미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한국문화에 푹 빠진 덕분인지 글로벌빌리지센터 센터장으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글로벌빌리지센터는 일종의 외국인 전용 동사무소다. 관할 지역 내 거주하는 외국인의 생활 편의 지원과 각종 서류 발급 등이 주요 업무다.
“저도 외국인이라 그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낯선 한국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각종 생활 문제가 생기면 하소연할 곳도 없거든요.”
센터와 대학교를 오가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뛰어다니지만, 각종 불우이웃돕기 행사 등에서도 마당발로 활동한다. 최근엔 외국인 중심의 자원봉사 모임도 만들었다. 앞으로는 결혼이주민 여성들을 돕는데 보다 전문적으로 나서고 싶은 바람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국가 등에서 온 외국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게 불친절하고 차별하는 모습을 종종 만나게 돼 마음이 아파요.”
크리스티나 씨는 “한국은 글로벌사회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나라인데 포용력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문화가정의 2세들이 이 사회에서 소외된 채 성장하면 앞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우려다.
“나라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아요. 저도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노력을 보태고 싶어요.”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하기보다는 에둘러 말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에도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아직도 속내를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모습은 좀 힘들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포용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대학 강단에 서면 학생들에게 “모르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니까, 알 때까지 물어보고 관심을 가지라”고 몇 번이고 당부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크리스티나 씨는 다소 엉뚱하게도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아줌마들은 정말 힘이 넘쳐요. 어떤 일도 할 수 있고, 부끄러워하며 뒤로 물러서지도 않아요. 저도 알뜰하게 살림도 더 배우고 똑 소리나는 아줌마가 되고 싶어요.”
지하철에 빈자리가 생기면 쏜살같이 달려가는 아줌마들의 모습에도 완벽하게 적응하고, 시간이 날 때면 백화점 시식코너도 즐겨 찾는다는 털털한 아줌마 크리스티나 씨. 그녀가 가진 긍정의 열정이 다음엔 어떤 분야에서 펼쳐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