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달자의 주일 오후] 내 피에는 여행이 흐르고 있다

입력일 2009-04-29 00:00:00 수정일 2009-04-29 00:00:00 발행일 2009-05-03 제 264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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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행가시게요?”

딸들과 함께 시장을 보거나 백화점 쇼핑을 할 때 종종 듣는 말이다. 나는 새 옷이나 모자를 사거나, 안경을 새로 맞추거나, 혹은 양말 한 켤레를 살 때도 반드시 한마디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여행갈 때 좋겠다….”

무슨 여행을 매일 떠나는 사람도 아니면서 왜 늘 여행타령을 금치 못하느냐고 딸들이 우스운 듯 나를 쳐다본다. 이제는 딸들이 먼저 말한다. “그거 여행갈 때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웃는다.

실제로 내 생활에서 여행의 횟수는 많은 편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도망친다 해도 어디 지방으로 원고를 메고 가는 것이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도 고작 여름에 문우(文友)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1년에 많으면 두 번, 아니면 한 번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나는 늘 여행을 꿈꾸며 사는 것일까.

여행에 대한 동경, 혹은 여행의 꿈이 내 피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안 정리를 하다 여행 가방이 눈에 띄면 발가락이 움찔한다. 짐을 싸서 어디라도 훌쩍 떠나고픈 충동이 온몸을 끓게 한다. 금세 공항이 떠오르고, 기내의 커피향이 느껴지고, 낯선 거리가 넘실거린다. 순간순간 홀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아버지는 정신적인 떠돌이셨다. 어디 메여 있는 것을 못 견디신 아버지는 치명적으로 6?25전쟁 때도 집에 계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여섯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데리고 친족을 따라 피난을 가야 했다. 그 전쟁 속에 정신적, 육체적 고난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훗날, 아버지는 어디로 피난을 갔는지 모를 가족을 찾아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걸어오셨다. 그리고 자신의 떠돌이 인생을 후회하셨다.

핏속에 있는 것은 피를 모두 바꾸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아버지는 당신 때문에 전쟁의 아픔을 몇 배로 겪은 가족들을 위해 고향에서 작심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1955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다. 어느 날 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보게 됐다. 나는 지금도 그 아버지의 일기장 덕분에 문학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하곤 한다.

문학은 보이지 않는 내면을 읽어내는 일이다. 내가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내가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 그 중에서 내가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것을 나는 어릴 적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아는 아버지는 돈도 잘 벌었고, 집도 있었고, 사회적인 지위도 훌륭했다. 당신은 더 가질 것도, 더 기다릴 것도, 그리고 더 그리울 것도 없는 완벽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내가 알고 있던 그 아버지는 없었다. 행복의 파노라마가 출렁일 거라 믿었던 일기장에는 페이지마다 외롭다는 말이 가득했다.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날개가 있다면 멀리 날아가고 싶다 썼다. 아버지는 늘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었던 ‘인간 새’였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니 일기장 속에서라도 멀리 멀리 날고 싶었을 게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양말 한 켤레에서도 여행을 떠올리는 것은 날고 싶은 본질적 꿈이 내 피에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리움을 참지 못하며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던 이스라엘 여행지를 생각한다. ‘그래. 예수님도 걷고 또 걸으며, 여행을 하시면서 당신의 꿈을 펼치셨지. 너무나 아프고 거룩한 맨발의 여행을….’

어쩌면 여행은 사고의 새로운 발견을 위한 통로일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자유’이며, ‘찾음의 길’이니깐 말이다. 작은 소품 하나에도 ‘여행 갈 때 좋겠다’고 말하는 내 모습. 그것은 언제나 떠나고픈 내 속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아니, 나만 그럴까. 세상의 모든 이가 ‘여행’이라는 말 한마디를 발음할 때, 이미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