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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지천명의 경지

입력일 2007-10-21 17:17:00 수정일 2007-10-21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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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께서 하늘의 뜻을 알게 된 것은 50이나(?) 되어서였다고 한다. 공자님은 이 고백을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하는데, 15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30살에 뜻을 확고하게 세웠으며(而立), 40살이 되어서는 세상 일에 휘둘리거나 미혹되지 않았다(不惑)고 했다. 그리고 50살이 되어서는 하늘의 뜻을 알았으며(知天命), 60살이 되어서는 생각하는 모든 것이 원만해 무슨 일이든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耳順)고 했다. 그리고 급기야 70세가 되어서는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그것이 세상의 이치와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고 한다.

옛날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얼마 안됐으니, 공자님이 설파하신 말씀 중의 나이들이 현대인들의 나이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조선시대 평민들의 평균 수명이 짧게는 30세, 길게는 50세였다고 하고, 그나마도 태어나서 1~2년 안에 죽는 아이들도 많았고, 열심히 건강 관리해서 60세를 넘기면 하늘의 명을 받았다고 해서 마을 잔치도 벌이고 했으니, 오늘날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평균 수명을 따지면, 옛 사람들이 말하는 나이는 아마도 80세 전후의 수명을 지닌 현대인들에게는 꽤 많은 연수를 더해야 할 듯하다. 그래서 예컨대, 옛 사람들이 뜻을 15세에 세웠다면 오늘날에는 아무래도 20세는 넘겨야 할 것이고, 불혹의 나이라는 40세는 아마도 오늘날에는 최소한 50 중반은 넘겨야 할 것이다.

어쨌든, 죽을 때까지 공자님이 말씀하신 이 각 연령대의 성취를 모두 이루는 사람은 그야말로 성인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평생의 목표를 세우는 일이야 누구나 할 일이지만, 70이나 80의 고령에도 여전히 미혹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물며 천명을 깨닫거나,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될까.

그에 반해 예수님은 이미 소년 시절에 자신의 소명을 깨달았던 것 같다.

루카복음은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대해 튼튼하고 지혜가 충만하게 자랐다고 간략하게 언급한다. 이어 12세가 되던 해에는 파스카 축제 기간이 끝나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도 혼자 성전에 남아있었다고 알려준다.

애타게 예수를 찾던 마리아와 요셉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함은 예수의 뜻이었고 하늘의 뜻이었다.

소년 예수는 이미 12세에 뜻을 확고하게 세웠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명을 알고 있었다. 예수는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그 한걸음 한걸음은 그대로 세상의 이치였고 하느님의 섭리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섭리를 익히 알고 있는 우리는 지천명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굳이 70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애당초 우리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삶의 체험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진리를 이미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를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전해져 오는 가르침을 통해 은총으로 선사받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주어진 선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선물인지 아닌지 조차 우리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분별력을 잃어버리긴 한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이 선물은 항상 우리 곁에 있고, 예수님은 미사 때마다 천명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손을 내미신다.

박영호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