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의 ‘삶·신앙’ 글 속에 묻어나
피땀으로 세운 한국 순교역사 고스란히 담아
『대감의 말씀은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소이다. 사람은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게 아니라 나은 내일을 바라 삶을 영위해가는게 아니겠소이까? 그렇다면 우리 진교는 오늘의 평안보다 내세에 누릴 영원한 복락을 추구하는 것이니 어찌 철리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시겠습니까?』
「상재상서」(上宰相書), 곧 「재상에게 올리는 글」을 통해 기해박해 당시 박해의 주동자였던 우의정 이지연에게 가톨릭 교리의 정당성을 알렸던 정하상. 1839년에 지어져 한국 최초의 호교론서라고 할 수 있는 이 글은 모두 3400여자의 순한문으로 된 짤막한 글이지만 천주학의 진수를 호교론적으로 밝히는 박력 있는 명문으로 전해진다.
그 주인공인 정하상 성인의 삶은 척박했던 조선교회의 재건과 성직자 영입을 위해 일생을 바친 한국 초대교회의 진실된 지도자의 그것이었다.
시인으로 「응답시편」을 비롯, 자신의 시세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앙을 탐구해온 신중신(다니엘)씨가 펴낸 「강 건너 저편-소설 정하상」(바오로딸)은 정하상 성인의 삶을 통해 조선땅에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조명한다.
또한 새로운 순교의 삶을 요구하는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특별히 소설로 쓴 정하상의 신앙과 삶의 기록인 이 책은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몇 안되는, 순교자들의 삶을 문학작품으로 승화하려는 시도이다. 한국교회가 선교 300년대에 들어서 있지만, 사실 가톨릭 문학, 특히 순교자들의 삶을 주제로 한 소설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순교자들의 땀과 피 위에 세워진 한국 천주교회의 영성은 곧 순교 영성일 수 밖에 없다. 순교 영성과 순교 신심은 한국교회의 가장 고유한 특성이기도 하거니와, 가장 큰 하느님의 은총이기도 하다.
단지 그분들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적은 기록이나, 혹은 초보적으로 그 삶들을 재구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삶이 지닌 깊은 신심과 영성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런 기대와 바람에 적지 않게 부응한다.
정하상 성인의 삶을 담은 이 전기와 함께, 당시 시대상 속에서 천주교회를 변호하기 위해 진력을 다해 적은 「상재상서」를 기도하며 읽어보는 일은 특히 순교자 성월인 9월에 우리들이 반드시 한 번쯤 해야 할 일인듯 싶다.
(신중신 지음/바오로딸/288쪽/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