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속에 드러난 ‘인간의 욕망’
권력·일상의 얼굴 대조적 조명
그림에 담긴 사상·문화도 살펴
「신(神)」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다시 등장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초기에는 성화(聖畵) 속에서 봉헌자의 모습으로 그려지더니, 점차 인물만 그린 독립초상화가 탄생했다. 중세에 자취를 감췄다가 부활한 초상화는 어떤 목적으로 그려졌고, 주인공들은 누구이며, 또 누가 그림을 그렸을까?
서양 미술사학자인 고종희(마리아.43.한양여대 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가 최근 내놓은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한길아트/364쪽/2만2000원)은 이러한 물음을 풀어나간 여정이다.
책은 르네상스 시대 초상화의 다양한 변천사를 살피며, 그 속에 투영된 사람들의 의식과 사상, 문화를 아우른다. 그 중에서도 「인간」을 키워드로 삼았던 초상화들을 찾아, 주인공들을 「권력의 얼굴」과 「일상의 얼굴」로 나눠 조명하고 그 예술적 가치를 탐사해 나간다.
라파엘로(1483~1520)의 걸작 「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교황의 오른쪽 사람은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 왼쪽은 루이지 데 로시 추기경으로 교황과 사촌간이다.
책은 그림에 전혀 문외한(門外漢)인 사람도 눈길을 붙들어매는 어떤 흡인력이 있다. 전면이 컬러인데다가, 저자의 애정과 열정이 가득 느껴지는 그림에 대한 소개글은 첫 장부터 르네상스의 역사 안으로 곧장 빠져 들게 만든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1부 「권력의 얼굴」 편에서는 교황과 황제, 군주 같은 한 국가의 통치권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홍보하거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들을 화가별로 모았다. 2부 「일상의 얼굴」은 귀족에서부터 평범한 소시민들까지의 초상화를 둘러보며 영원히 남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대해 조심스레 살펴본다.
특히 책장을 넘길수록 옆모습에서 서서히 얼굴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얼굴과 변화하는 포즈, 형식의 변천사를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이 부분이다. 라파엘로나 다 빈치, 뒤러, 티치아노 등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의 초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