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도마) 의사의 재판 전후 상황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자료가 새롭게 발굴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황인성) 산하 안중근기념관 신운용(36) 연구부장이 지난달 말 발굴 공개한 자료는 안의사에 대한 재판이 행해진 여순지역의 「만주일일신문」으로, 1910년 2월 8일자부터의 재판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다. 과거에도 만주일일신문이 발간한 「안중근사건 공판 속기록」을 번역한 「애국애정 안중근의사」를 통해 안의사 공판 속기록은 공개된 바 있으나 재판의 분위기 등 세부적인 내용이 알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조.석간으로 발행된 만주일일신문은 1910년 2월 7일 열린 제1회 공판에 앞서 군중이 모인 장면에서부터 14일 사형언도 공판까지 6회에 걸쳐 신문의 1∼2개면에 재판정의 전경, 진행과정 등을 삽화와 함께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나아가 이 기록들은 공식기록에는 없는 재판 주변부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어 향후 안의사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료를 발굴한 신운용 부장은 『안의사의 의거는 그의 신관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사를 통찰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관철하려 했던 신앙인의 의지를 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주일간 이어진 안의사에 대한 재판속기록을 싣고 있는 이 신문에 따르면 당시 평양에서 온 한국인 변호사 안병찬씨가 변호인으로 선정되지 못하고 일본인 2명이 변호인으로 선정돼 안씨는 방청석에서 안의사의 재판을 지켜봐야 했던 것으로 나타나 불합리한 재판과정을 알 수 있게 한다. 또 재판관 뒤에는 히라이시 고등법원장과 사이토 경시총장 등 고위 일본인사들이 앉아 있어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신운용 부장은 『안중근 의사는 믿음과 역사.정치의식을 일치시킨 뛰어난 신앙인이었음에도 그의 전기는 물론 자료도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은 현실이 우리의 무관심을 보여준다』고 밝히고 『천주교가 중심이 돼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의 모습을 제대로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