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류제옥 수녀의 성서말씀 나누기 (4) 여호수아 1~2장 (창녀 라합의 고백)

류제옥 수녀(마리아·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입력일 2000-12-03 08:19:00 수정일 2000-12-03 08:19:00 발행일 2000-12-03 제 222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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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향한 믿음에 동참
가나안 땅의 정복과 평등공동체를 희망한 라합
모범 여성상 우리에게 제시
이제 우리는 여호수아 본 내용의 1~2장을 통해 가나안 땅의 정복과 평등공동체를 희망한 창녀 라합이 고백한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지 알아봅시다.

여호수아 1장(서론)

1~12장은 가나안 땅 정복을 보고한다. 편집자의 의도는 세세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이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야훼께서 역사 안에서 위대한 행위를 하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정복은 그분의 권능을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는 것이다.

1장은 책 전체의 서론이다. 광야생활 40년만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죽자 야훼께서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워 요르단강 건너 약속된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령한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모세가 지시하는 모든 법, 즉 야훼의 명에 순종하면 승리와 번영이 있고 거역하면 고통과 실패가 있을 것이란 신명기계의 공식이다(10~18절).

야훼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것을 세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약속의 땅을 차지해야 한다(1~3절). 둘째: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느님 야훼가 너와 함께 있으리니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 떨지 말라』 (1, 9)는 도움의 말씀이다.

셋째: 위의 약속은 율법에 대한 순종과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질 때 성취되리라는 조건부로 주어진 것임을 강조한다(1, 8). 1장 10~18절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하나를 위한 전체, 전체를 위한 하나라는 연대책임이다.

모든 지파가 그들의 기업의 유산을 완전히 차지할 때까지 어떤 지파도 쉴 수 없으며 정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로 12지파에게 땅이 다 분배된 후 22장에서 르우벤, 가드, 므나쎄 반쪽 지파가 귀환함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시할 점은 이스라엘을 최후의 정착지로 인도하신 분은 능력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2, 1~24 예리고 지역의 정탐과 라합이야기

정복준비는 매우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예리고에 파견된 정탐꾼의 이야기로서 신학적 의미가 깊다. 하느님의 약속이 이스라엘의 군대보다 선행된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확인시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신뢰감을 갖게 하려는 것이며, 이로써 이 전쟁이 성전으로서 야훼께서 직접 참여하심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또한 이 정복사건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창녀 라합이라는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볼 필요한 있다.

라합의 고백(2, 9~11)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창녀 라합은 정탐꾼을 후대하고 또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 동참했기에 약속의 땅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특전에 참여했으며 후대에 훌륭한 여인의 표상이 된다. 예를 들면 마태오 1, 5절에서 그는 메시아의 조상이 되고(그리스도의 족보 중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았다) 히브리서 11, 31절은 그녀의 행동 있는 믿음을 찬미한다.

정탐꾼 파견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해준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을 매우 무서워한다는 정보는 예리고성의 공격을 승리로 이끌 것이며 이는 하느님이 진실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주실 것임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2종류의 창녀가 있었다. 그 하나는 「커데샤」로 불리던 제의적 창녀와 다른 하나는 「조나」로 불리던 세속적 창녀였다. 제의적 창녀인 「커데샤」는 가나안의 바알종교의 성전에 거처하던 창녀로, 세속적 매춘행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제사장 정도의 지위에 속했고, 성별되어 있었다. 예컨데 창체기 38장에서 다말이 창녀로 분장했던 것은 제의적 창녀로 분장했다는 것을 말한다.

라합은 제의적 창녀가 아닌 세속적 창녀인 「조나」였다. 즉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갖은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합의 삶의 정황은 그가 성을 정탐하러 온 히브리 노예들의 입장에 동조하여 자신과 같이 낮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2중으로 착취하는 가난안 체제를 없애기 위한 운동에 자신을 헌신한 그 사실에서 추론하여야 한다. 라합은 가난했다. 온갖 수치와 저주, 멸시 속에 생을 지속해야만 하는 우리사회의 수많은 매춘 여성들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이스라엘 평등공동체에 자신의 삶 전체를 투신한 라합을 새롭게 보아야한다. 비록 라합은 비천한 창녀였지만, 창녀로서 당하는 온갖 억울하고 한스런 것들을 이스라엘 평등공동체의 선택이란 행동을 통해 극복해 낸 모범적 여성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라합의 이야기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살아서 숨쉬는 역사적 교훈이다. 과거의 자기 삶을 완전히 바꾼 라합은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이 처한 불의한 환경에 대해 거부하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류제옥 수녀(마리아·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