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구라파 겉 핥기錄(록) (23) 땅위에 심은 꽃시계

글 신태민 · 그림 백인수
입력일 2023-02-15 13:14:41 수정일 2023-02-15 13:14:41 발행일 1966-04-17 제 51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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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꽃밭의 연속
시계명산지면서 더비싼 「즈네브」
미국배우 별장들 있는 곳
신부 · 수사는 「넥타이」차림

미국의 유일한 배우들이 별장지로 삼고 있다는 「즈네브」였다.

세계의 부자들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모여들어 사는 중립국가인 스위스의 「즈네브」였다.

그래그런지 물가가 억세게도 비싸다.

찬거리를 파는 식료품점은 월요일도 장사를 안하고 평일에도 쉬는 시간이 많은 여유있는 소비도시이다.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나라이지만 막상 시계점에 가서 사려고 하면 서울 명동거리에서 사는 것 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사야 한다.

나는 유봉구 신부님의 덕택으로 성직자 숙소에 들 수가 있었다.

준 성직자 대접을 받은 셈이다.

숙식비가 「호텔」의 3분지1 정도 밖에 안되는 싼 가격이었다.

「즈네브」 교외에 있는 이 숙소는 경치 좋은 숲속에 잠겨있었다.

그 숲속에는 스위스 군대들의 훈련하는 총성이 아침잠을 깨주곤 했다.

중립국에도 군대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군사훈련은 받게 되어있는 나라라는 것이었다.

이곳도 가톨릭에 반기를 든 이른바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탓인진 몰라도 가톨릭의 발육상태는 아직 좋지 못한 것 같다.

신부님이 숙소를 관리하고 계신다지만 누가 성직자인지 알 길이 없다.

신부님들 수사들 모두가 사복차림이다.

신사양복에다 「넥타이」를 매고 계신다.

식사때 반전축문을 외우시는 분이 관리 책임자 신부님이시란다. 미사참례를 해봐야만 「아 저분도 신부님이었더랬군」하고 신부님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사복차림이지만 유봉구 신부님만이 정식 신부차림이었다.

그러니 나를 보고도 『굳모닝 파더…』(신부님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하는 신부님도 계셨는데 그럴때마다 난처한 표정으로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신사복 입은 신부님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하기야 성직자 숙소에 넉살좋게 들어갔으니 그같은 오해를 받음직도 한 일이었다.

최근대식의 조그마한 성당을 예술품 어루만지듯 보면서 「즈네브」 호숫가로 향했다.

그림에서만 본 아름다운 「즈네브」 도시를 달리면서 나는 잠시 황홀해졌다.

꽃밭으로 연속된 도로.

자동차가 오가는 번화한 길거리 옆에 꽃시계가 있는 「잘딘 안그레이」 공원이 있었다. 파란 잔디밭 위에 빨간 꽃들이 자판을 이루고 있다.

땅바닥 위에 박혀있는 커다란 시계바늘이 꽃숫자위를 빙빙돌고 있다.

누구하나 꽃을 꺾는 어린이도 없다. 한국에서 식목일날 나무심으러 산에 갔다가 철쭉꽃이나 찔레꽃을 한아름씩 꺾어들고 오는 어린이들을 생각해 본다.

아니 「하이킹」 갓다가 오는 길에 꽃나무가지를 마구 꺾어들고 오는 수풍객들의 모습도 되새겨본다. 파란하늘이 잠긴 「레망」(즈네브)호수는 잔잔하기만 했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120 「미터」 높이의 분수가 호수 한가운데서 치솟고 있다.

세력좋은 폭포수를 거꾸로 놓고 보는 듯한 장관의 분수였다.

여러 시계회사가 공동으로 관광객 유치용으로 꽃시계와 함께 만든 것이라 한다.

막대한 금액을 들여 이 분수를 만들어 놓고 관광도시로 꾸민 그들의 사고방식이 또한 그 분수 못지않게 아름다운 것 같기만 했다.

우리는 「즈네브」 주재 한국 공관엘 찾아갔다.

낯선 외국땅에 가서 한국의 외교관을 만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여기서 당시 공관이었던 김용식씨를 만났다.

글 신태민 · 그림 백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