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춘수상] 춘래불사춘 / 김동길

김동길·연대 교수
입력일 2020-07-20 16:49:51 수정일 2020-07-20 16:49:51 발행일 1972-03-05 제 80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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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던 봄은 와도 가슴은 무겁기만
등교하는 학생들을 볼 때 감회는 착잡
젊은이들에게도 봄이 봄처럼 느껴질까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구나』하는 말은 입춘이 지났어도 봄빛이 멀고 취위가 계속되는 괴로움을 두고 한 말일 게다. 그러나 올해의 春來不似春은 색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이번 겨울은 참 겨울 같지 않았다. 예년에 비해 엄청나게 기온이 높은 겨울철이었고 수십 년 래의 처음 있은 이상 기온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석탄이 안 팔리고 기름이 안 팔려서 석탄장사 석유장사에게는 미안했지만 일반 서민층은 넘치는 하늘의 은총을 입은 셈이다. 길거리에 얼어 죽은 동포를 본 일이 없는 겨울이었다. 그러나 추울 때엔 춥고 더울 때엔 더워야지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가 산뜻하고 선명한 것에 익숙한 우리의 생리는 이러한 이상에 대비할 만한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를 못해서 다소 적응이 어려워 겨울 내 감기가 떠나지 않아 고생한 친구들도 많았고 또 이러한 기후상의 변조 때문에 중풍 고혈압 같은 병으로 덧없이 가버린 저명인사가 가장 많은 겨울이었던 것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다는 이 넋두리는 추위를 잃은 겨울이어서 봄이 왔으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깊고 까다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라고 읊은 영국 시인 쉘리의 말을 번번히 인용하며 우리는 무슨 막연한 희망과 동경으로 봄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기다리던 그 봄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들의 마음은 어째서 이렇게 무겁고 답답하기만 한가? 기성세대의 완악한 마음이 이렇거늘 무지개를 쫓으며 꿈을 씹으며 사는 젊은이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다시 봄바람에 밀려 캠퍼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수많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복잡한 감회에 사로잡히게 된다. 과연 이 봄이 봄처럼 느껴질까? 그들은 삶의 기쁨을 어디서 찾으며 젊음의 보람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두려운 생각조차 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이 나라의 학생들이 언젠가는 이 나라의 기둥이 되는 것이다. 요새 젊은 놈들이 머리나 기르고 여학생 팔이나 끼고 놀러나 다니니 희망이 없다고 비분강개하는 자칭 우국지사들이 많이 있지만 그 입을 조심해서 놀리지 않으면 우리는 국가적으로 파멸을 자초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우선 그런 악평은 타당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백의 하나나 둘밖에 되지 않을 타락한 학생을 가지고 학생은 다 그렇다고 단정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어른의 세계는 어떤데? 부정부패를 하지 않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할 때 百의 한둘이나 손을 들 수 있을까? (그것도 믿을 수 없지) 하기야 도둑놈도 자기 자식에게 도둑질을 가르치지는 않는다고 하니까. 아아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나. 교정의 목련은 피겠지 개나리도 피겠지 머지않아 벗꽃도 활짝 웃음을 던져 젊은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리라. 그러나 아아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나!

김동길·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