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직자가 엮는 신년수상] 6 짝이 이루는 조화/ 이용호

이용호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
입력일 2019-05-06 10:38:34 수정일 2019-05-06 10:38:34 발행일 1990-02-18 제 169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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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바꾸기 위해 실로 오랜만에 안경집엘 갔었다. 시력검사를 해보니 왼쪽 눈의 시력이 의외로 더 나빠져 차이가 많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짝눈이라는 말이었다. 전에부터 조금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차이가 심한 정도인 줄은 몰랐다. 돌아 오는 길에 여권 갱신을 위해 사진을 찍는데 사진사가 자꾸 왼쪽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라고 해서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사진발을 잘 받게 하려고 그런다고 했다. 양볼의 어금니를 쓰는 정도에 따라서 턱의 발달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보는 것이라는 꽤나 과학적인 설명으로 나를 당황케했다. 과연 거울을 보니 밥을 씹는 왼쪽 볼이 조금 커 보이는 듯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의 두 눈의 시력이 같은 정도로 나빠지는 경우 보다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듯 했다. 안경을 낀 주변사람들의 경우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예사였다. 그리고 보니 코가 한쪽으로 약간씩 굽어 있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도 들은것 같았다. 어금니의 발달 정도도 차이가 있고 두손의 경우에도 어느 쪽을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가 된다는것이 새삽스럽게 놀라운 발견처럼 여겨졌다. 또한 구두를 사서 신어보면 두 발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의 육신이 이렇게 한몸 안에 어느 한쪽이 부족하더라도 상호조화를 이루도록 되어 있기에 서로 보완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짝을 이루고 있는 어느 한쪽만 사용할 경우 조화의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부의 경우에는 한몸 안에 두가지가 짝을 이룬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두 인격체가 온전히 주고 받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족된 점을 극복하고 조화를 이루게 된다. 부부란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는 살림을 맡아서 하기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결혼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느쪽에 조건이 퐁족하기 때문에 의존하는 관계도 아니다. 그러나 부모를 떠나 둘이 한몸을 이루었다는 것은 짝의 조화를 통하여 삶의 이 터전을 풍요롭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이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를 위해 주고 자기 몸 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괴롭히는 것은 이미 짝의 조화를 벗어난 이기심이며 배우자 외에 다른 배우자를 돌아보는 것은 자유의 남용이기에 절제와 희생없는 사랑과도 같아 향기 없는 조화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부자와 빈자가 권력을 가진이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어진다. 이들에게도 예외없이 짝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저변에는 아직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뿌리깊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은「힘의 논리」에서만 가능하다는 투쟁적 사고가 팽배해 있는 탓일게다. 빌어먹는 주제에 빌어 먹는 친구를 잊지 않고 돌보는 우리의 소박한 친구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도 희망이 넘친다.

우리가「한마음 한몸」이라는 표현을 쓰는것은 짝이 갖는 조화를 쓰는것은 짝이 갖는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일게다. 우리몸의 기능이 둘로 이루어진 것은 무리한 비유이긴 하지만 두인격이 한몸이 가장 완전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부자와 빈자도 권력을 가지자와 안가진 자도 한마음 한몸으로 짝의 조화를 이룬다.

사제는「짝」이 없으면서도 어떻게「짝」이 있는것같이 말하는가? 사실 사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자기의 짝이다. 그래서 자신이 살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짝이 되어 주고 부단히 조화를 이루어 한몸이 되려는 욕심 꾸러기다.

부부의 한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설상 서로 완연히 다르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촉매로서 누룩으로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스승 예수가 가르쳐주셨다.

과거를 살았고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도 어느 한쪽에만 집착하면 형평을 잃어 버리기 십상이다.

우리의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남 없이 어떻게 존재할수 있었으며 역사의 토대위에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무시한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될것이다. 희망찬 새해에는 우리가 동방자라는 의식을 통해서 모든이에게 짝을 이루는 조화를 펼쳐 나가는 한마음 한몸을 느끼고 실천해야 겠다.

이용호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