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처럼 자네에게 마음으로만 편지를 쓰다 오늘은 이렇게 진짜로 펜을 들었네. 자네에겐 할머니요 내겐 어머니이기도 하신 분께서 전해주시는 말씀으로는 그대가 아주 씩씩하게 잘 하고 있다니 그렇게 믿고는 있네만….
자네 소식을 전하는 할머니의 속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네. 이 고모의 눈치가 좀 빨라야지.
어쨌든 우리 집안의 응석받이인 막내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다니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네.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야말로 우리 집안에서 대한의 보통 남아들이면 당연히 마쳐야 할 군 복무를 ‘제대로’하는 첫 번째 남성이 아닌가. 동작동 국군묘지에 누워계신 자랑스러운 그대의 할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시리라 믿고 있네. 물론 자네 아버지나 자네 형도 군복무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어디 ‘의가사제대’나 ‘방위’가 3년 가까이를 채우는 진짜 군인과 같겠는가.
그래, 몸은 어떤가. 또 마음은 어떠한가. 몸도 중요하지만 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믿네. 마음이 깨끗하고 걸릴 것이 없으면 몸은 자연히 가벼워진다네. 아무리 몸이 편해도 마음이 정화되어 있지 않으면 몸은 한없이 늘어질 뿐이기 때문이지. 물론 주일미사 참례는 정성껏 하고 있으리라 믿네. 군대만큼 하느님의 존재가 필요한 곳이 또 어디 있겠나.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사람들과의 인화라고 생각하네. 내 경우도 사람을 상대로 하는 자리가 아닌가. 때문에 어떤 때는 일보다도 사람들 간에 인화 문제로 더 머리를 썩일 때가 많다네. 일에 대한 성취감이 없다면, 또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일이란 단순히 먹을 것을 해결해주는 하나의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고 볼 수 있지. 잘은 모르지만 군대란 곳도 역시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사람들과의 인화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네. 만일 그대가 그대의 동료들과 또 상관들과 인간적인 유대를 잘 맺고 있다면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다는 말이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군대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사회생활도 잘 할 수가 있다고. 만일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군종신부님께’ 의논을 드리고.
자네도 이제 어느 정도 느끼고 있겠지만 참으로 묘한 것이 인간관계라네. 한 가정에서도 서로 의견을 맞추기가 어렵고 가장 가까워야할 부부사이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라고 하지 않은가. 물론 이 관계를 아주 잘 풀어나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네. 나는 남자들의 경우 사람과의 본격적인 관계를 풀어나가는 연습장이 바로 군대라고 보고 있네. 그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에게 군대는 엄청난 경험의 장이 아니겠는가.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어떤 환경에서든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하셨다네. 그 말은 인간은 어느 환경에서든 살아 나갈 수가 있다는 것이지. 내가 남자들을 존경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군대라는 조직’을 잘 헤쳐 나와 사회에 진입한다는 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자네는 바로 그 점에서 ‘선택받은 남성’ 중의 한 사람이라고 보네.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 또 건강한 생각을 가진 진짜 사나이들만이 뽑히는 군대라는 곳에 당당히 선별됐으니 말일세. 물론 자네는 신앙이라는 더 큰 무기를 지녔으니 더 할 말이 없네.
우리 사회는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을 만큼 팽팽 돌아가고 있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하네만 걱정스러운 부분도 상당히 많다네. 구조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 일부터 그 잘못을 고치는 일까지 구석구석 청소가 되고 있다고나 할까.
군대 역시 선두에 서서 개혁이라는 바람을 맞았다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겠지. 조금은 어수선하고 또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이 모든 혼란스러움이 정돈을 향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그리 힘들 것도 없다고 생각하네. 다만 문제는 이 고모를 비롯한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은 개혁이나 변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지. 만일 나부터, 우리 모두가, 변화의 주인공이 되고자 노력한다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변화는 훨씬 앞당겨 질 수가 있다고 보네만….
이 고모는 군대라는 새로운 사회 안에서 자네가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사귀기를 바라네. 마음을 활짝 열고 자네의 사랑을 남들과 나누기를 바라네. 자네의 그 따뜻한 마음을 친구들과 더불어 하기를 바란다네. 아울러 무엇보다도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네. 그 모든 것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좋은 ‘믿음’이 아닌가 생각하네.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의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참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한번 받아들여보게. 세상이 달라보일걸쎄. 친구가 새로와 보인다네.
집안 걱정일랑 하느님께 맡겨두게나. 자네 아버지나 어머니도 자네 이야기만 나오면 눈부터 젖어들지만 이 땅의 부모들이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 부모들의 엄청난 사랑을 일부나마 알아차릴 수 있다면 자네나 자네의 모든 군인 동료들은 아마도 벅찬 가슴을 가누지조차 못할 걸세.
하느님께서 자네의 영혼과 육신을 맡아주시도록 기도하겠네. 이 고모가 자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고 또 그것보다 큰일은 없기 때문이지. 보다 더 성숙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우리 다시 만나도록 하세. 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