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7-09-19 18:39:35 수정일 2017-09-19 19:38:48 발행일 2017-09-24 제 306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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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J.취제크/ 최진영 옮김/ 652쪽/ 1만6000원/ 바오로딸
“처절했던 고통마저도 은총이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1963년 10월,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내게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러시아에서의 생활이 어땠습니까?’ 둘째, ‘도대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까?’”

무려 23년간이나 러시아 수용시설에서 강제노동과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잠시도 하느님을 멀리하지 않았던 월터 J.취제크(Walter J.Ciszek, 예수회) 신부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다. 자신에게는 그저 살아온 삶이지만 타인에게는 의구심으로 다가오기 십상인 삶…. 하도 많은 사람이 똑같이 해대는 물음에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

취제크 신부는 1937년 6월 2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고 러시아 선교를 꿈꾸며 폴란드라는 낯선 땅으로 향했다. 1941년 NKVD(소련 내무성 비밀경찰)에 체포돼 루비안카 감옥에서 5년간 받은 취조, 소련 노동수용소 굴락에서는 15년간 극한의 추위와 싸워야 했다. 굶주림은 일상이고 혹독한 심문, 그보다 더한 굴욕과 맞서야 했다. 오욕의 세월을 넘어 1963년 다시 고국 땅을 디딜 수 있었던 그는 1984년 하느님 품에 안겼다. 20년 넘는 세월을 견디며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삶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바오로딸에서 내는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 열두 번째 편인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를 읽다보면 가슴 한켠이 젖어온다. 순교자성월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취제크 신부의 삶을 마주하다 보면 신앙 선조들이 겪었던 고난을 자연스럽게 묵상할 수 있다.

1부-소년 시절, 2부-모스크바의 교도소, 3부-노릴스크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4부-제한을 받아야 하는 자유인, 5부-귀향으로 구성된 책은, 취제크 신부의 어릴 적부터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빼곡하게 실었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고난 중에 신앙이 단단하게 자리 잡는 과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의 러시아 수용기는 언뜻 보면 소설 같다. 겪었을 고난과 좌절이 현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극한적이기 때문이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낯선 곳을 전전하는 취제크 신부의 모습은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쓰라린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모습은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참다운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취제크 신부는 “하느님께서 나를 일부러 부르셔서 그러한 생활을 위한 준비를 시켜주시고, 시베리아에서의 오랜 생활 동안에도 나를 늘 보호해 주셨다”며 “내 생애의 이정표마다 하느님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하시어 길을 가르쳐 주셨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책은, 그의 경험을 감추거나 강조하지 않고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독자들은 백발의 취제크 신부를 만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또 ‘고난의 상황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의 신앙을 되짚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