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수도의 길목에서]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김 엠마누엘라 수녀

김 엠마누엘라 수녀 ㆍ예수 성심 전교수녀회
입력일 2017-07-17 14:39:12 수정일 2017-07-17 14:39:12 발행일 1993-02-28 제 184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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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년 전에 필리핀의 국제 아시아 양성협회의 주최로 18개 나라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모인 곳에서 약 1년간을 함께 산 적이 있다. 그 많은 나라 사람 중에서 특히 지금까지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이가 바로 대만에서 온 한 수녀이다.

그 수녀는 인상적으로 호감이 가는 그런 형은 아니었다. 하얀 얼굴에 균형이 잡히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고 언제나 수줍어하여 말이 좀체로 없었다.

영어를 다 알아듣기는 했으나 표현이 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 수녀 앞에서는 마음 놓고 시원찮은 영어를 신나게 마구 말할 수 있어서 항상 만만했고 또 편안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농담들을 문장이 되든 안되든 쉴새없이 들려주었고 순박한 그녀는 무척 많이 웃어 주었으며 유달리 나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시장에 가야 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싫었다. 『시장엘 가야 하는데 가기 싫다. 어쩔꼬?』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가 지나가다가 듣고는 『걱정마! 내가 가서 다 사가지고 올께』라고 하는 것이었다.

『만약 사온 것이 너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가서 바꾸어 주겠다』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시장까지는 그곳에서 약 3시간이나 소요되는 거리이다. 얼마뒤 물건을 사왔는데 말을 잘못 알아들었던지 내가 원한 바로 그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도 만족한다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으나 그 수녀는 얼른 알아차리고 『다시 가서 바꾸어 오겠다. 아무 염려말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나보다도 몇 살이나 아래인 그 수녀를 통해서 항상 타산적으로 살아왔던 내 모습을 새롭게 바라 볼 수 있었다.

명절이면 그는 모든 이에게 푸짐한 선물을 나누어 주었고 틈틈이 음식을 만들어 더위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곤 했다.

언제나 타산적이지 않았던 그녀, 조그마한 것을 받고도 몇 배 큰 것을 내어놓는 그들의 순박함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며 영원히 벗으로 남아 있고 싶은 느낌이다.

김 엠마누엘라 수녀 ㆍ예수 성심 전교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