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상허문화재단이 제정, 시상하고 있는 「상허대상」수상자로 3월 15일 입국, 이색적인 옷차림으로 국내 언론의 후래쉬 세례와 세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1주일간의 조국 체류를 마치고 22일 출국한 「한국인 아프리카 추장」 한상기 박사가 가톨릭신자로 밝혀져 다시한번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를 떠나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정착한지 12년만에 원주민들에 의해 추장이 됐죠. 이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국제열대농학연구소에서 연구생활 5년만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들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강하고 증산을 배가시키는 개량 카사바, 얌, 식용 바나나의 육종개발에 성공하여 지역의 식량증산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추장에 추대되어 10여년간 추장직을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황색인종, 아니 외지인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원주민들의 요청으로 추장이 돼 추장, 육종학자, 교수, 시인, 외교관, 평화의 사도로 평생을 검은대륙 아프리카에서 살아오고 있는 농학박사 한상기(노렌조ㆍ59)씨가 추장이 된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한상기 박사는 지난 71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조교수 시절 미국 록펠러재단이 아프리카의 식량문제 해결을 연구하기 위해 나이지리아에 설치한 국제열대농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자원, 『제2의 슈바이처 정신으로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20여년을 아프리카들을 위해 살아오고 있다.
『대자연의 신비에 묻혀있는 아프리카를 보면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새삼 외경심을 느끼게 됐고, 아프리카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성전임을 깨닫게 됐다』는 한박사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온갖 질병과 해충, 맹수, 한발, 홍수 등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원주민들에 의해 추장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나이지리아 제2의 도시 이바단에서 20㎞ 떨어진 인구 10만의 「이끼레」 마을에서 추장 직분 수행과 함께 한달의 3분의1 정도를 신품종보급과 기술자 양성 및 종자수집을 위해 아프리카 전역을 돌아다니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총 인구중 농업인구가 80%를 차지하는 이 지역의 추장은 「농민의 왕」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한박사는 『현재 인구 10만명이 살고 있는 이끼레마을은 왕 「오바」를 중심으로 전문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20여명의 추장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면서 자신의 추장으로서의 역할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참석하고 마을의 자문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2남2녀의 자식과 부모ㆍ자식간의 정까지 끊고, 적응하기 힘든 식생활의 어려움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한박사에게 아프리카 생활 20여년은 하느님과 자연, 사람에 대한 가슴 뜨거운 애정을 뿌리내린 시기였음을 고백할 정도로 아프리카 현지인들에게 위대한 인물로 들어 올려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전역에 많은 토속종교가 있는데 이 모든 토속종교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편견』이라고 지적한 한박사는 『이들은 종교를 떠나서는 잠시도 살지 못할 정도로 열렬한 신앙심을 갖고 있지만 단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신앙에 대한 강렬한 열정에 대해 설명했다.
한박사는 『나이지리아는 아직까지 개발의 여지가 많은 나라이지만 아프리카에서 가장 국력이 강하고 교육열이 높다』면서 『가끔씩 종교간 마찰이 있으나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나이지리아의 종교 분포도는 북쪽지역은 아랍의 영향을 받아 모슬렘이 강하고, 서남부지역은 모슬렘과 기독교, 동남부지역은 가톨릭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프리카에 온 이래 주일미사를 빠지지 않고 다닐수 있었던 것이 하느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내려주신 가장 큰 은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한박사는 『아프리카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뻤던 때는 한국인 박용철 신부가 나이지리아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였다』고 회고했다.
한상기 박사는 아프리카 전지역에서 온 농촌지도자 6백여명을 훈련시키고, 1천여명의 농촌지도자를 교육했으며, 50여명의 농학 석ㆍ박사를 배출했다 또 그동안 영국 기네스 과학공로상, 대한민국 대통령상, 국제 구근작물학회 공로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영구 황실 생물학술원 명예회원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