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 수상 소식을 듣자 ‘우리 그레고리오가 ‘아빠’ 하고 또 한 번 부르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울 때 교회에 큰 신세를 졌는데요, 저에게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은 가장 아플 때 만난 하느님과 우리 아들 그레고리오를 새로 기억하게 하는 상입니다.”
박승민(율리아노)씨는 가톨릭신문사가 올해 제정한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 첫 수상자다. 그는 올 1월에 선보인 시집 「슬픔을 말리다」로 이번 상을 받게 됐다.
수상작 「슬픔을 말리다」에는 개인적 아픔을 사회적, 보편적 아픔과 연결해 창작한 시작들을 담아냈다. ‘작은 것’을 ‘큰 것’과 연결시키는 노력을 바로 이 시집에 녹여낸 것이다. 박승민 시인은 한 예로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그 마르지 않는 눈물의 고통을 짐작한다. 박 시인도 10여 년 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다. 치료제인 ‘로렌조 오일’로 더 잘 알려진 희귀난치병 ALD(부신백질이영양증)였다.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했고, 인간으로서는 더 할 수 없는 한계에 맞닥뜨려서는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아이들에게 배에서 탈출하란 단 한 마디만 해줬어도 대부분 살아나올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만 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이들, 살릴 수 있었는데 못 살렸다는 생각만 하면 눈물이 터지는 이들의 슬픔을 ‘말리는’데 함께하고자 하는 뜻을 시에 실었다. ‘말 말 말’, ‘돈 돈 돈’만 하는 물질만능주의를 넘어서 인간을 보고자 했다.
아들을 잃고 그의 삶은 새로운 옷을 입었다. 글만 남기고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외적으로는 문명의 이기를 남용하기 보다는 조금 불편하지만 에너지도 줄이고 소박하게 사는 삶을 택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가질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다들 똑똑한 척 살아가지만,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됐습니까?”
현대인의 삶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 몇몇 사람들은 그야말로 죽자고 써대도 다 못쓸 만큼 많은 돈을 독식하고 있는 반면 굶주림과 고통에 끙끙대는 이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박 시인은 “내 자식들도 못 지키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못 지키면서 수많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슈퍼컴퓨터를 개발해 우주비행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도 못하는 현실”이라고 한숨을 쉰다.
“인간생명은 어떤 기준으로도 따질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지켜야 하는 최고의 가치인데….”
박 시인은 “시가 바로 그 자본의 논리를 계속 벗어나는 삶을, 더 넓고 자유로운 삶과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박 시인은 ‘허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가 말하는 허무는 ‘인간의 소유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자꾸 소유하려다 보니 온갖 악행들과 부작용들이 나온다고 말한다. 수많은 하느님 말씀 중에서도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면 다른 것들도 이른바 도미노처럼 지켜진다고 강조한다.
시를 통해 박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로움’이다. 현대인들에겐 자유가 불안감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당장 수도가 끊어져 물만 안 나와도 밥도 못해먹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는 삶, 수도 파이프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삶이 과연 자유로울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보다 돈만 생각하는데 가속도를 붙여간다. 그는 시를 통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본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 희망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박 시인은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문인단체인 ‘작가회의’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민족민중문학을 이루는 일에 뜻을 함께 해왔다. 하지만 작가들이 1980년대 사회적 활동들을 주도하다 보니, 문학적인 면에서는 빈곤해지는 것을 체험했다.
박 시인은 “구호가 시가 될 수는 없다”면서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풍성한 작품세계를 통해 사람과 사회의 변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전한다. 보다 나은 인간 삶을 위해 좋은 작품을 써서 나누는 것이 바로 작가의 몫이라는 말이다.
특히 박 시인은 시작을 통해 가장 가까운 것에서부터 가장 먼 곳까지 같이 보는 삶을 추구한다. 이를 테면 꽃 한 송이가 흔들리는 가장 가까운 현상을 볼 수 있는 반면, 그 꽃의 내면과 근원을 바라보는 가장 먼 곳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 살지만 현실 너머의 성스러운 것을 찾아내는 눈이 시인에게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먼 곳에 있는 것을 우리들 곁에 갖다 놓는 것이 바로 시이고, 시인의 몫입니다. 그래야 인간의 시야가 좀 넓어지고 삶의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