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삶은 온전히 나에게 즉 ‘문학’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그 길에서 만난 ‘한국가톨릭문학상’은 ‘그래 너는 소설을 써라’고 말해주는 메시지처럼 다가옵니다.”
정길연(베트라) 소설가가 제1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 소식을 들은 직후 밝힌 속내다. 33년째 각종 문학작품을 써온 작가지만, 자신의 에너지를 100% 발휘해 글 속으로 빠져든 적은 없는 듯하다고 조심스레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상을 받는 것은 늘 부끄러웠다고. 이번 수상 소식은 스스로도 ‘이젠 나도 글을 써도 되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그래서 더욱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작가는 지난 1984년 중편소설을 내놓으면서 소설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0대 때부터 전력을 다해 시를 쓴 배경을 고려할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력이 아닐 수 없다.
등단 초기 그에게 ‘소설이냐’ 혹은 ‘시냐’라는 질문은 무의미했다. 그저 글이 좋아 중학생 시절부터 작가의 길을 걷고자 준비했다고. 작가는 “글은 나에게 취미이자 특기, 직업”이라면서 “특히 소설은 일상 그대로를 글로 표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시를 먼저 쓴 덕분에 소설에서 정확한 문장과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것은 그의 특기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가 소설가로서 다른 길을 곁눈질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소설의 힘 덕분이다.
“우선 소설을 쓰는 사람의 내면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매우 넓
어지지요.”
“소설은 자신의 내면을 비롯해 인간 군상 모두를 탐구하는 것”이기에 오랜 기간 소설가로서 살아온 이들을 보면, 그들의 내면적 성장도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정 작가도 자신이 관심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설을 선택했다. 또한 “소설은 사랑을 담는 것,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라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소설을 쓰는 이유를 밝혔다.
여러 문학 장르 중 소설은 가장 통속적이라는 평을 받곤 한다. 정 작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장르의 소설을 쓰면서도 세속적인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책을 살만한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 싫어하고 불편해할 이야기들을 다루지 않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 작가는 “잘 팔리는 책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쓰기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쓰는 것”을 택했다. 조금 무겁고 답답해도, 쓸수록 성장할 수 있는 글을 쓰려 했다.
정 작가는 등단 직전 부유했던 가세가 한순간에 기울어지면서, 가난과 소외의 밑바닥까지 내려앉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덕분에 나는 ‘밥 맛 없는 인간’이 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고, 동시에 글을 쓰는 삶을 가지게 됐다”면서 당시의 경험을 큰 자산으로 소개한다.
특히 그의 소설을 읽으면 갑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연민이 내 글의 힘’이라고 답변한다. 인간에 대한 지극한 관심, 연민의 시선을 간직한다는 것은 그를 소설가로 서 있게 하는 자질이었고, 소설가로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됐다.
진짜 감정에 인색한 요즘 시대에 타인을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연민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단어가 돼 버렸다. 자신의 이익과 성공 앞에서 연민은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정 작가는 순수하고도 지독스러운 그 사랑, ‘연민’을 늘 품고 있다. 자신이 창작한 인물들이 연민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불행이 시작됐다고 느낄지언정, 궁극적으로 연민으로 감싸 안은 사람과 삶은 질서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바로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인간 구원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작가의 연민은 본인의 실제 삶에서도 이주여성과 탈북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관심과 지원으로 확대돼 왔다.
정 작가는 1980년대 한국 가톨릭교회가 펼쳐낸 사회적 역할들을 보고 자발적으로 성당을 찾았었다. 냉담을 하기도 했지만, 신앙생활에서 발을 뺄수록 신앙에로는 더욱 깊이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젠 소설 즉 문학을 통해 영성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깊이 하고 있다. 정 작가는 “소설도 집 짓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이젠 내가 짓고 싶은 집만이 아니라, 누군가 들어오고 싶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집을 짓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크다”고 말한다.
“소설가마저도 낮은 곳을 바라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이 인간에 대한 관심을 버리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는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묵묵히 성실하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희망과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