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주교주교단단장이자 신철학원 원장 종훠이더(宗懷德) 주교와 당산교구장 류징허(劉景和) 주교 등 일행 8명은 대구 방분에 이어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에 머물며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하는등 9박1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9월 29일 출국했다.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초청으로 대구와 서울을 각각 방문한 종주교일행은 중국교회 애국회 최고위 성직자로 한국교회간의 협력과 교류를 모색하기 위해 방한했으며 전성심여대 학장 주매분 수녀가 통역을 맡았다.
9월 25일 서울대교구 최창무 주교가 초청한 만찬을 시작을 서울일정에 들어간 종주교 일행은 한국에서의 첫 순교자가 된 주문모 신부의 순교지 새남터를 시작으로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을 방분하고 한국평협 임원들과의 오찬회동을 가졌다. 특히 종주교일행은 9월 26일 오전 9시 중국인 신부로 한국에 들어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주문모 신부의 순교지 새남터성당에서 주문모 신부의 순교정신을 기리는 미사를 봉헌하고 감격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국평협 이관진 회장이 초청한 한국 평협 임원들과의 오찬에 참석한 종주교는 「한국 방문이 내집에 온 것처럼 푸근한 것은 초기 교회때부터 지속돼온 한국과 중국교회 간의 형제적 사랑과 우애가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라며 「한국교회와 중국교회는 신앙을 지키고 전파하기 위해 피로 맺어진 형제교회」임을 강조했다.
명동주교좌 성당 방문과 계성국민하교, 샬트로 성바오로수녀원에 이어 종주교일행은 9월 26일 오후 5시 교구청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했다.
이자리에서 김추기경은 「한국땅에 처음으로 전교를 하러 오신분이 주문모 신부였던 것처럼 중국교회는 우리교회를 도와준 모교회라 할수 있다」며 과거 북경교회와의 인연이 그만큼 길었음을 강조하고 「종주교님을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과거부터 양국교회는 형제적 신앙의 유대를 깊이 간직해왔기에 더 없이 기쁘다」고 인사를 대신했다.
이에대해 종훠이더 주교도 「양국교회는 치명자들의 피로 맺어진 형제교회인 만큼 앞으로 양교회 관계를 더욱 강화시켜 나가자」고 말하고 「특히 김수환 추기경께서 시기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중국을 꼭 한번 방문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또한 이 자리에서 김추기경은 금년에 사제서품 금경축을 맞이한 유징허 주교에게 특별히 축하의 말을 전하고 「기회가 닿는다면 중국을 방문해 북당과 남당등 신앙선조들의 발자취가 서린 성당을 찾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종주교 일행은 이와 함께 9월 27일 오전 9시 30분부터 서울 강동구 고덕동 장애인 종합복지관을 방문, 장애인 재활시설을 둘러보고 이어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에 들러 사무차장 성환해신부의 안내를 받아 각 부서를 시찰했다.
9월 28일 서울대교구 사회복지회 성가정입양원 방문에 이어 종주교일행은 오후 2시부터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 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연구장인 조규만 신부의 사회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유바이니안(劉柏年) 중국 천주교 교무위원회 부주임은 「중국교회의 현황」을, 종훠이더 주교는 「중국에서의 신학교육」에 대해 각각 강의를 했으며 벨기에서 특별히 초대된 핸드릭스(Heyndrickx)신부는 현대 중국교회와 유럽교회와의 관계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세미나 발표후 질의는 교황청과 중국교회와의 관계에 모아졌으며 종주교 일행은 「중국교회 문제는 곧 바티칸과 중국정부의 문제」라 정의하고 자신들은 두 국가간의 관계가 빠른 시일내에 개선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북한교회 신자들은 한국신자들과 똑 같은 「민족의식이 강한 신앙인들」이라고 강조하고 하루빨리 신부를 모셔 완전한 교회가 되고자 하는 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교회 방문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한 종주교는 한국을 떠나기 앞서 29일 오전 9시 로얄호텔에서 한국방문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초청해주고 따뜻하게 환대해준 한국교회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영신생활 면에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어 좋았고 특히 한국교회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기쁨을 감출수 없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종주교는 현재의 중국교회는 매일 크고작은 성당이 하나씩 생겨날 정도로 많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며 한국교회와 중국교회는 형제적 교회인만큼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교회간의 협력이 강화될수 있기를 희망했다.
또한 종주교는 김수환 추기경과 이문희 대주교 최창무 주교의 중국방문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고 전하고 가까운 시일내에 중국을 방문해줄 수 있도록 초청했다.
지난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선 종주교는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듯 흐느끼며 「그당시 성직자들과 함께 체포돼 얼굴에 풀칠을 당하고 포박당한채 끌려다니다 거리에서 인민재판을 받기도 했다」고 전하고 재판후 초기 5년간 건설노동현장에서 강제노역한 뒤 그 후유증으로 아직도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주교는 「그때의 고통은 육체적으로만 힘든 단순한 고통이여서 지금의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오히려 지금이 해야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힘이 모자라고 조건이 안돼 문혁때보다 더 어렵다」고 실토했다.
종주교일행은 숙소인 로얄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떠나기 앞서 숙소를 찾아온 최창무 주교와 오태순 신부, 장덕필 신부의 환담을 갖고 「관리적 사목적, 복지적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발전상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백문이 불여 일견」 이라는 격언을 이제야 실감할수 있었다」며 한국교회의 발전상에 깊은 관심을 표시하고 「중국에 돌아가서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중국교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종주교화 류주교를 비롯 최창무 주교 등 약국교회 관계자들은 함께 손을 맞잡고 라틴어로 주의 기도를 합송한 뒤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늘 함께 있을 것」이라며 작별을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