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들이 즐겨 바치는 기도 중의 하나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이다. 필자는 이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는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잃어가고 있다. 쉽게 흥분하고 분노하며 미워하고 두려워한다. 믿지 않는 이들이야 주님을 알지 못해 그렇다고 하더라도 많은 믿는 이들도 이 평화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평화로 다시 오신 주님을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요한 14,27-31ㄱ)
사람은 무릇 고통과 모진 세파에 시달려 보지 않고 진정한 평화와 행복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 인생은 삶의 긴 여정에서 인내심을 갖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도 줄곧 달려가야 하는 과정이다. 인생은 마라톤에 비유한다. 춥고 무덥고 바람 불고 비오고 눈보라 친다고 그때마다 출발을 포기하거나 다음으로 미룬다면 결승점에서의 환희와 성취감을 경험하지 못한다.
인생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즐겁고 기쁜 일만 담긴 융탄자가 자기 앞길에 깔려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우린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던 일보다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더 많이 기억한다.
‘평화’란 말만 들어도 포근함을 느낀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당신께서 주시는 평화는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분이 내 짐을 들어주시고 나를 그분에게 맡김으로써 얻는다. 또 그분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얻는 평화이다. 이 평화는 내 현재의 조건을 초월한다. 내가 가난해도 나오는 평화이고, 목숨을 잃는다 해도 얻는 평화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고난을 잊어버림으로써 생기는 평화는 아니다. 오히려 고통에 처해 있는 현실은 더욱 뚜렷해진다. 우리의 마음을 그분과 함께하며 얻는 평화이다. 내 고통을 이해하고, 내 고통을 안아주고, 내 고통을 알아주는 그분이 곁에 있어 평화를 얻는 것이다. 나는 쓰러지지만, 하느님께서 이 아픔을 치유해주실 것이란 믿음. 내 아픔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지만, 나는 이겨낼 수 있다. 아버지께서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삶이 흔들리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고요히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마음의 평화는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과 겸손에서 비롯된다. 낮은 자리에서,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세상을 마주하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존재는 스스로 향기를 드러낸다. 우리의 태도가 향기이다. 살아온 이력과 살아갈 비전이 한 사람의 미래이며, 가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 하루가 소중하다.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진정한 평화를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