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멋대로인가 법대로인가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2011-04-08 00:00:00 수정일 2011-04-08 00:00:00 발행일 2000-07-23 제 221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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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주년 제헌절을 보내는 올해의 감회가 유별나다.

이 7월에 다시 개헌론이 떠오르고 있다. 5년 임기의 대통령 단임제를 4년 중 임의 정·부통령제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이런저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 헌법도 한번쯤 광범위한 재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과연 지금이 그 때인가.

국민이 문제를 지적하고 국민적 공감으로 그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는 이때 개헌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일까.

우리 헌정사는 개헌의 수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개헌안으로 비롯된 정치파동,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10월 유신이라는 제2의 구테타, 그리고 체육관선거…. 이 과정에 숱한 개언이 이뤄졌다.「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헌법」이었다.

말로는 “법대로…”

6·29선언 이후 개헌이 오늘날까지 정부 선택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헌법으로 헌정사상 가장 긴 수명을 누려오며 한때 내각제개헌 문제를 놓고 헌법이 정쟁의 회오리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새천년 들어 제기되고 있는 대통령 중임제의 개헌논의, 지난 대선 이래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개헌논쟁에 이어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정치권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의료계 파업과 금융 파업 등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권력구조 개편문제가 정치권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일 뿐이다.

『법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이 있는가 하면『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도 있다. 또『법대로』란 말도 있다.

법이란 우리 사회질서를 떠받치는 보루임에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 법이 심히 흔들리고 있다. 법집행 및 적용의 형평성 상실 때문에 의료대란 초기에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고 역설했으나, 어느날 갑자기 그 원칙을 훼손하고 후퇴하며 이해집단의 파업이 줄을 이다.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을 무기로 삼고 은행원들은 남의 돈을 담보로 투쟁을 벌인 것이다. 공공의 이익이나 가치, 질서는 사라지고 힘의 논리에 따라 정글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법대로』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공동선을 서슴없이 짓밟는 기득권층의 『멋대로』는 반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기강이 무너지고 법이 먹혀들지 않는 아노미(무질서) 상태로 치닫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불안한 것이다.

전국의 모든 의사들이 가운을 벗어던지고 폐업계를 내버리는 세계 초유의 극단적 의료대란이 벌어지는 나라에 법이 있는가. 모든 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제도화되지 못하고, 우격다짐인, 세련되지 못한 사회에서는 법의 영이 설 수가 없다.

법과 원칙을 다시 세우자

사회 전반에 팽배한 불신풍조, 개인이건 집단이건 공동체 정신을 외면하는 절저한 이기주의, 내일을 설계할 줄 모르는 조급증은 법과 원칙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국가와 정부의 첫번째 존재의의야말로 사회적 법칙을 만들고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연속되는 위기를 집단이기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부의 책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한비자에 의하면 법질서가 바로 정도다. 그리고 권력은 법질서의 표지이며 통치자는 권력의 인격화다. 『고로 만약에 이 세상에 법질서가 필요하다면 지겨워도 권력이 존재해야 하며, 미련한 통치자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대전제가 따른다. 곧 모든 불법과 폭력 위에 법이 엄존하고 있다는, 그리고 그 법에 궈누이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온갖 폭력과 불법에 시달리며 마치 나침판을 잃은 배처럼 흔들리고 있는 것은 법질서의 정도가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법의 영이 서지 않을 때 , 이해당사자의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정부는 형평성을 잃은 채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해 여기저기서 사회 근간이 위협을 받을 뿐 아니라,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 이대로는 안된다. 원칙과 법을 다시 세우자. 그것이 개헌론 제기보다 더 시급한 일이 아닌가!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