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 화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생활비도 보태줄 겸, 없는 돈을 모아 그의 화실에 찾아가 10호 크기의 그림 하나를 손에 들었다. 붓 대신 나이프를 사용하여 힘찬 터치로 산을 멋지게 그린 작품이었다. 화폭 안의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없는 것이 나아 보이는 짧은 선 두 개가 흠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에게 『이 선은 왜 넣었니?』라고 물으니, 『조화를 깨는 이 선이 없다면 아마 그림이 너무 점잖고 밋밋할 거야. 없다고 생각해 보렴. 느낌이 어떨는지』라고 응수를 해왔다. 그 그림은 나의 침대 옆벽에 걸려 있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산의 정기를 느끼며 힘을 얻는다. 때로는 작가의 인생에 대한 유머감각을 생각하기도 한다.
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은 예술의 세계에서도 교묘하게 섞여들어 있다. 원칙만으로 작곡된 음악이나 그렇게 그려진 그림, 변칙만으로 작곡된 음악이나 그림, 반칙이 난무하는 음악이나 그림은 아마 잠시는 견딜 수 있어도 오래 가까이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한 작품들은 우리의 정서에 너무 빡빡하거나 불안하고 종종 역겹기까지 할 것이다.
규칙적으로 잘 진행되는 리듬과 멜로디가 계속 그렇게만 진행되면 기계적인 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높은 음과 낮은 음, 긴 음과 짧은 음, 조화와 부조화가 한데 교묘하게 섞여 예측하기 힘든 인생살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 때 위안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조화로 가득 찬 고전음악이나 낭만파 음악의 위력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이 많이 섞인 현대음악이 살아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재즈가 악보도 없이 연주자들이 서로 적당히 눈치를 보며 각자의 다양한 인생살이를 알아서 표현하는 음악이어서 인기를 끄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 전통악기 중 타악기로만 구성된 사물놀이가 이십여 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난타가 관객을 많이 동원하는 이유도 원칙과 변칙 그리고 때로는 반칙이 교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화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가죽 타악기와 쇠 타악기, 별로 특별하지 않은 보잘것없는 크기와 모양, 도마나 냄비 또는 부엌칼과 같은 악기라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것 같은 손놀림, 원초적인 감각을 파고드는 소리와 같은 것들이 교묘한 조화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기에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것이리라.
사물이나 사람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내던 젊은 시절의 피카소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입체파를 거쳐 현대미술에 심취하여 이해하기 힘든 선과 면 그리고 색채들로 화폭을 채운 데에는 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이 한데 섞여 있는 인생살이의 깊은 면을 표현해 보려는 의도에서 일 것이다. 그러한 그를 현대인은 동감하기에 그의 작품을 좋아할 것이다.
오늘날 창작에 대한 보상은커녕 정상적인 노동력의 대가도 되지 않는 값으로 그림을 내다 팔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어, 생계의 고통을 삶에 대한 애정과 푸른 예술혼의 정기로 버티는 화가와 조각가 그리고 공예가들에게 연민의 정을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