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생명 수호를 위한 법률가 모임 ‘루멘비테’ 태아 기본권 보호 위한 낙태죄 개정방향 온라인 세미나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0-10-05 수정일 2020-10-06 발행일 2020-10-11 제 3214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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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보호는 헌법적 요청… 사회·경제적 사유 인정은 곧 낙태 허용
남성 책임 강화하고 임신·출산·양육 보호해야
갈등 중인 여성이 출산할 수 있도록 상담하고 사회·경제적 지원과 익명 출산 등 제도화 필요
낙태 거부한 의료인 피해 없도록 권리 도입도

“태아 생명 보호는 헌법적 요청이고, 사회적·경제적 사유는 낙태죄 관련 개정 법률안에 포함될 수 없다. 출산 유도 상담제와 의료인 낙태 거부권이 도입돼야 한다.”

생명 수호를 위한 법률가 모임 ‘루멘비테’(회장 윤형한)는 9월 24일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진행한 ‘태아 기본권 보호를 위한 낙태죄 개정방향 온라인 세미나’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올해 말까지 낙태죄 관련법을 제·개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태아 생명 보호와 생명 보호 공익 실현을 위한 입법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루멘비테 회원들과 각계 전문가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2019년 1월 발족한 루멘비테가 대외적인 공식 활동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명 수호를 위한 법률가 모임 ‘루멘비테’가 9월 24일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진행한 ‘태아 기본권 보호를 위한 낙태죄 개정방향 온라인 세미나’에서 법무법인 제민 노희범 대표변호사가 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의 효력과 입법방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태아 생명 보호는 헌법적 요청”

세미나에서 ‘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의 효력과 입법방향’을 주제로 발표한 노희범(라우렌시오) 법무법인 제민 대표변호사는 “태아 생명 보호는 헌법적 요청이고, 다만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과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현행 낙태죄 규정은 올해 말까지 유효하고 이때까진 개선 입법이 필요”하지만, 이는 “여성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해 제한적으로만 낙태가 허용되는 것일 뿐”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태아 생명 보호는 여전히 중요하고 절실한 공익임이 향후 입법 방향에 있어 기본 원칙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노 변호사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서 “국가가 낙태 상황을 방기해선 안 된다”며 “입법자는 인간 생명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현실에서 임신한 여성이 모성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국가는 미혼부 등 남성 책임을 강화하는 ‘양육책임법’ 제정,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여성이 부담 없이 임신·출산·양육할 수 있는 모성보호정책, 임신한 부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육아시설 확충 등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입법을 (개선 입법 시)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가장 기본적인 맹점은 사회적·경제적 사유”

이날 질의응답·토론 시간에 발언한 루멘비테 회장 윤형한(야고보·프로라이프변호사회 회장) 변호사는 지난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문에서 “가장 기본적인 맹점은 사회적·경제적 사유”라고 지적했다. 당시 헌법재판소 다수 의견은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했고, 그 사유들로 ▲학업이나 직장 생활 등 사회 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며, 다수 의견이 제시한 사유들과 비슷한 사유들은 너무 많아서 이를 전부 열거해 입법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결국 이는 ‘낙태 전면 자유화’ 주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소수 의견(합헌 의견)에는 “다수 의견이 설명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는 그 개념과 범위가 매우 모호하고 그 사유의 충족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도 어렵다”며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 허용은 결국 임신한 여성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이를 허용할 경우 현실적으로 낙태 전면 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해 일반적인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인 2019년 7월 8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낙태죄 헌재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주제 정책토론회 중 참석자들이 “태아 사랑, 생명존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생명 수호를 위한 법률가 모임 ‘루멘비테’는 태아 기본권 보호를 위한 낙태죄 개정방향 온라인 세미나에서 태아 생명 보호는 헌법적 요청이며, 사회적·경제적 사유는 낙태죄 관련 개정 법률안에 포함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출산 유도하는 상담’과 ‘익명 출산 허용’ 필요

‘낙태의 규범적 의미와 법개정을 위한 제안: 루멘비테 개정안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제한 한경대학교 법학과 신동일 교수는 ‘상담조건부 낙태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낙태 갈등 상황에 놓인 여성이 낙태하지 않고 출산할 수 있도록 낙태에 대한 위험성, 임신·출산 시 받을 수 있는 지원 사항, 익명 출산 절차 등을 알려줄 수 있는 상담이 필요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날 루멘비테가 제시한 ‘상담조건부 낙태에 관한 법률’안에는 여성 선택으로 인한 태아 생명권의 지나친 침해를 방지해 보편적 인간 존엄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임부에 대한 주거 또는 직업, 교육 등을 포함한 사회적·경제적 지원 ▲낙태 수술과 그에 따른 육체적·정신적 후유증, 위험성 ▲입양 관련 법적·심리적 사항 등이 일반 상담 내용에 포함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익명 출산에 대해서도 ‘신분을 노출하길 원하지 아니하는 임부는 익명 출산을 할 수 있다’는 등 조항이 담겨 있다.

■ ‘의료인이 낙태를 거부할 권리’ 인정돼야

특별히 대한산부인과학회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로서 세미나에 참여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 최안나 센터장은 ‘의료인이 낙태를 거부할 권리’가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1항에 따르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의료인이 낙태 거부를 이유로 벌칙을 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당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최 센터장은 “미국, EU 회원국 중 21개 국가와 스위스·노르웨이 등은 낙태에 대한 양심적 거부를 법률로 허용하고 있다”며 “의사가 낙태 관련 의료 행위나 시술 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참여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지난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2012년 8월 23일 낙태죄 합헌 결정 이후 불과 6년여 만에 바뀐 결정이라는 점,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태아 생명 즉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살인죄는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인간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되어야”하며, “낙태와 유아 살해는 흉악한 죄악”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70~2271항)

◆ 루멘비테(Lumen Vitae)는?

라틴어로 ‘생명의 빛’이라는 뜻으로, 2019년 1월 생명 윤리 연구 목적으로 창립된 법률가 모임이다. 법률가들을 중심으로 의료인과 종교인 등 타 분야 전문가들도 일부 참여하고 있으며, 회원 수는 20여 명이다. 창립 후 매달 1회씩 모임을 가져 왔으며, 지난해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는 관련법 개정안을 만들어 왔다. 루멘비테는 앞으로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도 생명 윤리 관점에서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