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대전교구 청양본당, 복자 이도기 순교 220주년 세미나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8-09-11 수정일 2018-09-11 발행일 2018-09-16 제 311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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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형벌의 고통까지 하느님께 봉헌했다
정사박해 때 희생된 내포 지역 순교자들 행적 조명도

지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 반열에 오른 이도기(바오로, 1743~1798)가 순교에 이를 수 있었던 신앙 원천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과 마주하려 했던 ‘대월(對越)의 삶’과 ‘고통의 봉헌’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월은 조선교회에서 ‘하느님께 잠심(潛心)하여 기도하는 생활’ 또는 ‘묵상’을 지칭할 때 사용했던 용어다.

대전교구 청양본당(주임 김영삼 신부)은 9월 8일 오후 2시 충남 청양 정산중학교강당에서 ‘복자 이도기 바오로 순교 220주년 세미나’를 열고 충청도 청양 출신으로 정산 옥 밖에서 매를 맞아 순교한 복자 이도기의 신앙과 삶을 학술적으로 조명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도기 바오로의 믿음살이’를 주제로 발제한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정환 신부는 “복자 이도기가 신앙을 받아들이고 감옥에서 순교하기까지 믿음살이 안에서 대월하는 방법은 기도와 묵상이었고, 장소에 국한됨 없이 매일 매 순간 경문(기도문)을 바치고 첨례표에 따라 축일과 재계를 지키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을 마주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또 “이도기는 대월과 더불어 자신이 겪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하느님이 허락하셔서 이뤄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오히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봉헌하는 태도로 임했다”고 강조했다.

내포교회연구소 방상근(석문 가롤로) 연구위원은 ‘18세기 말 내포 교회와 정사박해’ 발제를 통해 이도기를 비롯한 100여 명이 희생된 정사박해(1797~1799)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 또 순교지와 순교 형식 및 순교자들의 행적·신심을 밝혔다.

방 위원은 “정사박해는 1795년 이후에 지속된 주문모 신부에 대한 추적, 급증하고 있던 충청도 지역의 교세, 1790년대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 기근의 원인을 신자에게 전가하는 분위기 등이 맞물려 일어났다”고 설명하고 “100명 이상이 순교했으나 순교자 중 이름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이도기, 박취득, 원시보 등 2014년 복자로 선포된 8명”이라고 말했다.

정사박해를 정조의 교화주의 입장에서 전개된 박해 사건으로 규정한 방 위원은 “그런 배경으로 형벌보다는 교화를 통해 천주교를 막으려 했다”며 “순교자들이 대부분 장사(杖死)한 것은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을 강화한 결과”라고 말했다. 아울러 “당시 정사박해 속에서 순교한 순교자 8명은 복음 전파와 나눔 실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체포 후에는 혹독한 형벌에도 확고한 믿음을 보였다”고 특징을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